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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섬에 ‘예술꽃’이 피었네.. 60여 작가들,백령도에서 ‘분단’을 묻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매일매일 첨단 디지털기기를 손에 쥔 채 글로벌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우리에게 ‘분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슈다. 잊고 싶지만 우리에게만 특별히(?) 부여된 ‘분단’이란 과제를 다룬 전시가 대한민국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서 지난 27일 개막됐다. 정전 60주년 기념전시이자,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 특별한 전시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4~5시간이 걸리는 백령도는 북한 황해도 장산곶과 불과 13㎞ 떨어진, 대한민국 최북단의 섬이다. 포(砲)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귀를 얼얼하게 하고, 섬 전체에 철조망과 초소가 끝없이 늘어서 있으며 1만여 주민 중 절반이 해병대원인 이곳에 ‘예술’이란 꽃이 활짝 피었다.

백령도 곳곳의 대피소와 철조망, 유서 깊은 성당과 병원, 심청각 등에서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백령도 52만5600시간(1953~2013)과의 인터뷰’가 막을 올린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난지 52만시간 동안 백령도에 켜켜이 배어 있는 섬 주민들의 이야기와 역사에 주목한 60여 작가의 작품이 곳곳에 내걸림으로써 섬 전체는 예술품이 됐다. 예술가들은 분단과 휴전의 의미를 곱씹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인 백령도가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길 소망했다. 


미술가 김기라(39)는 백령도 내 제7대피소에서 ‘이념의 문제- 수취인 불명/북으로 보내는 편지(황해)’라는 10분짜리 영상 작품을 상영 중이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미지의 북녘 동포에게 편지를 썼다.

“냉면을 먹다가 당신 생각이 나 편지를 적습니다. 평양냉면. 남한에서 ‘평양’이란 이름이 이렇듯 친근하게 불리는 게 또 있을까요? 냉면집에선 ‘평양’을 큰 소리로 외치건, 깃발에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평양’을 적어 펄럭이게 하건 누구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시내 한복판 광장이나 군중이 모인 집회 현장에서 펼쳐졌다면 아주 예민해졌을텐데 말이죠. (중략) 자고로 냉면 한그릇은 왕부터 평민까지, 예부터 지금까지, 북에서 남까지 두루 섭렵했던 음식입니다. 맛에 대한 공감은 같은 기억의 공유가 아닐까요? 이건 우리가 한 핏줄이고, 한국말을 사용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그 편지들을 유리병에 담아 백령도 사곶해수욕장에서 띄워 보냈다.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이 바로 ‘…북으로 보내는 편지(황해)’이다. 작가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개성만두처럼 남과 북 모두의 뇌리 속에 또렷이 각인된 음식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이념을 뛰어넘어, 동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임을 드러내고 있다. 


김기라의 작업 옆에는 박승진의 ‘지울 수 없다’라는 영상작업이 내걸렸다. 박승진 또한 백령도 해변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작가는 백령도 모래사장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끊임없이 모래를 흩트린다. 그러나 그림자는 꿈쩍도 않는다. 박승진의 이같은 퍼포먼스는 작가 스스로의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종전(終戰)과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지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우리의(또는 백령도의) 현실을 은유한다.

7대피소 외벽에는 신예작가 그룹 스위트포테이토의 일원인 이지수(25)의 텍스트 작품이 내걸렸다. ‘나오쇼 나오쇼 나오지마쇼 나오지마쇼’라는 뚱딴지같은 글귀에 대해 작가는 “소설집 ‘백령도의 추억’ 중 김용성의 소설에서 발췌한 글귀로, 한국전쟁 직후 감방에서 간수의 눈을 피해 포로들이 긴박하게 나누는 대화의 한토막이다. 위험과 안도가 거듭되는 그 숨막히는 상황이 백령도와 잘 맞는 것같아 택한 글귀”라고 했다. 이지수 작가는 백령도 곳곳에 다양한 내용과 색상의 플래카드를 내걸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백령도 내 예술레지던시에 체류 중인 재일교포 작가 김수미(34)는 백령초등학생 100명과 조화를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해병대관사 철조망에 매달았다. 집 안의 헌옷으로 만든 색색의 장미꽃 조화들은 철조망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아 찰랑대며 팍팍한 이산의 삶을 운위해온 실향민들을 위무하고 있다. 이는 또 초긴장의 삶 속에서도 긍정의 일상을 영위하는 백령도민에게 보내는 꽃다발이기도 하다.

백령도 출신의 작가 최정숙은 자신이 백령도에서 살던 집이 허물어져가는 과정을 회화와 영상으로 담아냈다. 가족사진과 각종 자료를 차용한 일종의 아카이브 전시인 그의 작업은 백령도에서의 오랜 시간이 축적된 작품이란 점에서 전시 취지와 잘 부합된다. 


이밖에 중견작가인 이종구, 오원배, 서용선, 이인, 윤석남, 홍선웅 등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겨레의 삶, 백령도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또 함경아, 리경, 이이남, 공성훈, 고찬규, 노기훈도 저마다의 독특한 작업들을 백령도 곳곳에 쏟아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주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의 이승미 관장은 “백령도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황해의 최북단,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섬이지만, 기름진 땅과 풍부한 어족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 섬이 품고 있는 절박하면서도 진실한 이야기에 예술가들이 주목했으니 미래의 백령도는 예술로 운위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백령도에서의 전시( ~8월 7일)가 끝나면 인천아트플랫폼과 트라이볼로 전시를 옮겨 오는 10월 6일까지 후속 전시를 펼친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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