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체·바퀴 따로 움직이는 청소기
이동 편하고 뒤집힐 염려 없어
“기술편향서 고객편의로 발상 전환
첨단제품 개발로 이어져”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제품들이 뭔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문화유산과 이종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은 새 제품들을 속속 내놓으며 침체된 가전시장에 자극제가 되고 있는 것. ‘혼자서 고독하게 해답을 찾아야 하는’ 전자산업 맹주로서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최근 내놓은 프리미엄 청소기 ‘모션싱크’는 세계 시장을 겨냥했다.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진입제품’ 역할을 하는 청소기 시장을 장악해 삼성 브랜드의 프리미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런 만큼 공도 많이 들였다. 강력한 흡입력에 자외선 살균 기능, 알레르기 방지 기능, 미세먼지 제거 기능 등 가정에 필요한 기능이 모두 장착됐다.

이보다 제품을 가장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은 디자인과 구조, 편의성. 본체와 바퀴가 따로 움직이는 ‘본체회전’ 구조와 함께 바퀴 윗부분이 안쪽으로 향하는 ‘피라미드 구조 캠버드 휠’이 적용됐다. 이동이 편할 뿐 아니라 제품이 뒤집어지거나 넘어지지도 않는 게 특징이다. 기존 제품보다 40% 커진 바퀴(지름 22㎝) 덕분에 훨씬 사용자를 잘 따라온다. 삼성전자 역시 “그간의 어떤 청소기들보다도 편리하고 강력하다”고 강조한다.

제품의 핵심이 된 ‘피라미드 구조 캠버드 휠’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청소기의 이동성과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자 고민하던 개발진이 장애인올림픽을 보던 중 경주용 휠체어 바퀴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술 편향적 사고 대신 고객 편의적 사고로 발상을 전환한 게 개발자들의 시야를 넓히고 첨단 제품의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전자의 TV, 가전 신제품들이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얻은 영감이 반영되고 있다. 프리미엄 청소기 ‘모션싱크’<사진 위쪽 부터>의 구조는 경주용 휠체어에서, 스마트에어컨‘ Q9000’의 기류제어방식은 항공기 제트엔진에서, 곡면형 OLED TV의 디자인은 고대 원형극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슷한 사례는 삼성전자의 다른 생활가전 제품에서도 감지된다. 올해 초 나온 스마트에어컨 ‘Q9000’은 항공기 제트엔진의 기류제어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다. 팬이 하나인 기존의 일반제품들과 달리 독립된 회오리팬을 2~3개 장착해 이를 섞어 원하는 방향과 강도로 공기를 보낸다. 특히 흡입된 공기를 바로 토출하는 하이패스 방식의 회오리팬을 채용해 더 멀리, 더 넓고 빠르게 공기를 순환시켜준다. 이 역시 에어컨만 붙잡고 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발상이다. 기본 원리가 같기 때문인지, 에어컨의 송풍구 부분의 디자인은 제트기의 분사구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8년 연속 세계 1위를 노리고 있는 TV 분야의 야심작인 커브드(곡면형) OLED TV에는 고대 원형극장의 디자인이 더해졌다. 단순히 화면을 휘게 하는 것을 넘어 인체공학적 곡면 디자인과 새로운 조형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무엇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장 안에 있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고민했다고.

이때 디자인팀과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준 게 고대 원형극장. 제품을 둘러치고 있는 사각의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원형극장의 무대와 객석을 연상케 한다. 이 때문에 디자인의 이름도 경기장이나 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타임리스 아레나 디자인’이다.

제품에서 느껴지는 이 같은 변화는 달라진 삼성전자와도 관계가 깊다. 시장점유율 1위를 넘어, 부진한 생활가전 시장의 수요 창출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삼성전자의 고민이 제품에 담겼다는 평가다. 경쟁자나 업계에서는 더 이상 참조할 게 없어진 고독한 존재가 돼버린 이의 노력이 제품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장을 이끌고, 창조하고, 혁신하는 역할을 하는 회사가 된 만큼 제품 역시 기획과 개발 단계에서부터 다양하고 치밀한 검토를 거친다”면서 “최신 제품들에는 이러한 고민과 영감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