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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의 본질을 ‘움직임’으로 간파한 칼더 “모빌은 한편의 詩”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모빌은 그저 움직이는 납작한 물체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시(詩)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고정된 조각만 있던 1930년대 미술계에 ‘움직이는 조각’(모빌)을 처음 선보이며 20세기 현대조각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알렉산더 칼더(1898~1976)가 생전에 자주 읊조린 말이다. ‘자연의 본질은 움직임’이라고 간파한 이 선구자적 작가는 일평생 철사와 철판을 끼고 살며 대자연의 운동감을 조각으로 표현해냈다.

전세계 미술교과서마다 ‘모빌의 창시자’로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는 이 거장의 작품이 서울에 왔다. 삼성미술관 Leeum(관장 홍라희)은 ‘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Calder)’전을 18일부터 10월20일까지 연다. 

칼더는 우리와도 친숙한 작가다. 갓난아기들 조차 머리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빌(물론 칼더의 아름다운 오리지날 모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멀지만)을 보며 생을 시작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모빌과 예술세계 전모는 오히려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리움이 뉴욕 칼더재단과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작가 회고전으로, 대표작인 모빌과 스태빌은 물론 초기작인 철사조각과 회화및 드로잉 등 칼더의 전(全)시기 작품 110점이 출품된다. 구불구불 뒤엉켜진 철사더미와 철판, 나무로 가득찬 작업실에서 치열한 예술실험을 통해 ‘공간성’과 ‘시간성’을 동시에 품은 ‘모빌’이라는 혁신적인 조각을 창안해냈던 위대한 천재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칼더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화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지만 대학은 엉뚱하게도 공대를 다녔다. 실용적인 진로를 선택해보려 했던 것. 공대 졸업 후 칼더는 4년간 기술계통에 종사했으나 타고난 재능을 어쩔 수 없어 미술을 다시 전공했다. 미대 졸업한 후 잠시 삽화가로 일했던 그는 역동적인 서커스에 매료돼 많은 스케치를 그렸다.

1926년 파리에 도착한 칼더는 낡은 일상오브제를 철사로 연결해 미니어처 서커스(‘칼더 서커스’)를 만들었다. 그리곤 이 작은 조각을 움직여가며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서커스 공연을 본 몬드리안, 미로, 뒤샹, 아르프 등은 곧바로 칼더와 가까와졌다. 그는 철사를 마치 붓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루며 지인과 유명인사, 동물을 만들었다. 인물의 특징, 동세 등을 딱딱한 철사로 너무나도 잘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파리 시절 칼더는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등 당대 미술사조의 세례를 받았다. 또 기하추상 화가인 몬드리안과 조우하며 추상화 작업도 시도했다. 이번에 선보여진 1930년작 ‘무제’ 등은 회화에 있어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였던 작가의 면모를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조각으로 다시 돌아와, 늘 마음에 품었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조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 우뚝 서있는 나무와 꽃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 그리곤 1931년, 크랭크와 모터를 사용해 움직이는 첫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를 본 마르셀 뒤샹이 ‘모빌’로 명명하며, ‘움직이는 조각’은 마침내 태동했다.

이듬해부터 칼더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작품을 천장에 매달아 자유롭게 움직이게 했다. 양감(부피감)과 좌대에서 해방된 그의 하늘하늘한 모빌은 조각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바꿔놓았다. 특히나 ‘공간의 예술’인 조각에 ‘시간성’을 더했다는 점에서 모빌은 ‘혁신적인 조각’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빌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칼더가 창안한 또다른 철판 조각인 ‘스태빌’은 주변 공간에 활력을 부여하는 조각으로 꼽힌다. ‘스태빌’이란 이름은 동료조각가인 아르프가 붙여준 것으로, 다소 냉소적인 뜻이 담겨 있음에도 칼더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1940~50년대 전성기를 맞아 칼더는 보다 역동적이며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모빌을 선보였다. 1943년에는 최연소 작가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만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 시기 모빌을 제작하는 칼더의 솜씨는 직관의 경지에 올라선바 있다.

칼더는 동물조각도 여럿 남겼다. 일찌기 아홉 살의 나이에 구리판을 접어 새와 강아지를 만들었던 칼더는 작가가 된 이후 동물을 소재로 수많은 드로잉과 나무조각,철사조각을 제작했다. 버려진 식료품 깡통으로 한마리 아름다움 새를 만들어내는 등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모빌, 스태빌 중에는 동물 형상을 추상적으로 옮긴 것이 여럿이다. 이후 작가는 특유의 공학기술을 이용해 공공장소와 썩 잘 어우러지는 대형조각을 다수 제작했다. 대형 철판을 잘라 볼트로 조립한 그의 공공조각은 세계 곳곳의 공원과 광장에 설치돼 오가는 이들을 맞고 있다. 칼더의 작품은 공간에 시간을 더해 ‘4차원적 개념의 조각’으로 불리며 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시 출품작은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해외 유수 미술관에서 어렵사리 대여해온 것들이다. 또 칼더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및 자료 등도 함께 선보여지고 있다. 전시작들은 왜 세계 미술관이며 애호가들이 칼더의 모빌에 그토록 매료되는지, 또 그의 회화는 왜 그토록 아름답고, 리드미컬한지 살필 수 있게 한다. 

말년의 대표작인 ‘거대한 주름’(1971), 빨간 치즈를 연상케 하는 ‘무제(Untitled)’(1976) 등 두점의 대작은 Leeum 야외정원에 서로 마주보며 다정하게 설치됐다. 미술관측은 칼더가 출연하는 서커스 퍼포먼스도 상영한다.

부대행사도 다채롭다. 오는 31일에는 최태만, 진중권 교수가 강연하며 가족워크샵 ‘서로 기대어 서기’(총 44회, 528명)도 곁들여진다. 02)2014-6900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2013 Calder Foundation,New York/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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