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왜 부모 앞에만 서면 쭈뼛쭈뼛?.. 미술로 푼 그 대화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요즘 현대미술가들이 다루는 주제는 거창하기 이를 데 없다. 전 지구적 환경문제라든가 좌우대립, 전쟁, 폭력, 종교는 물론 인간의 욕망과 소외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그러나 그들의 소통은 언제나 외부로 향해 있다.

이렇듯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에만 관심을 두었던 작가들이 모처럼 자신의 부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자신들이 치열하게 펼쳤던 그 ‘예술’이란 것의 정체에 대해, 부모와 흉금없는 대화를 나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된 기획전 ‘쭈뼛쭈뼛한 대화’는 작가 4명과 그들의 부모가 꾸미는 4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구민자 ‘구양문화재단 창립총회’. 영상작업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가 공모한 ‘아트선재 오픈 콜#2’에 뽑혀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이성휘 씨는 “많은 예술가가 시대와 역사, 예술과 삶에 대해 갖가지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장 밀접한 존재인 부모와의 ‘예술 소통’은 소홀히 해왔다”며 “비록 쭈뼛쭈뼛 쑥쓰럽긴하나 부모와 작가가 서로를 이해보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거창한 담론이 없다. 그 대신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리고 예술에 대해 부모와 자식이 나눈 성실하고 진솔한 대화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소영 ‘드물게 찾아온 시간'. 비디오, 칼라, 사운드. 22분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이소영 작가는 토목공학, 의상학을 전공하고 각자 전문분야에 매달리느라 놓쳤던 부모와의 흘려보낸 시간을 이번 기회를 통해 되짚었다. ‘드물게 찾아온 시간’이란 타이틀 아래 작가는 매일 아침 식탁에 질문지를 올려놓았다. 이에 부모는 손글씨로 찬찬히 답을 적어 내려갔다. 살면서 가장 외롭다고 느낀 순간, 꿈, 콤플렉스 등에 대한 질문은 매우 내밀한 사안이라서 관심을 모은다.

데뷔 이래 개인의 삶과 갈등, 감수성에 문화와 역사가 관계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던 이소영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박형지(왼쪽) ‘웨딩케이크’.린넨에 유채. 유창희(오른쪽) ‘무제’.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작가 구민자는 성년이 된 후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 관계를 예술가와 그를 지원하는 예술재단의 관계로 설정한 작가는 부모의 성을 따 ‘구양 문화재단’이란 가상의 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재단의 약관, 작가 지원내역 등을 소상히 밝혔다. 어찌보면 지극히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제도로 치환한 작가는 사진 및 설치미술을 통해 그 특별하면서도 끈끈한 관계를 재치있게 해석해냈다.

화가인 박형지는 퇴직 후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와 서로의 작품을 나란히 선보이는 ‘너의 그림’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여는 공동전시를 통해 서로 엇박자를 달리는 작품을 돌아본 두 사람은 전업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을 함께 성찰하고 있다.

전시기획자인 이성휘는 20여년간 한학을 연구하며 붓글씨 작업에 몰두해온 아버지의 서예 전시를 기획함으로써 그동안 무심히 봐왔던 부친의 여정을 새롭게 들여다봤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같은 기간 아트선재센터를 찾으면 박건희문화재단에서 시상하는 ‘다음작가상’ 11회 수상자인 정희승의 사진전 ‘부적절한 은유들’(3층)도 볼 수 있다. 다음작가상은 박건희문화재단에서 2002년부터 매년 5월 공모를 통해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를 선정해 지원해온 젊은 작가 지원사업이다. 두 전시 통합관람료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02)733-8945

yrlee@heraldcorp.com

이성희 부친 이정길씨의 작업실을 촬영한 ‘고천의 작업실 한구석’.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