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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병정’ 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졌다
국가공무원 33년3개월 그리고 또다시 플러스 알파…윤성규 환경부 장관
방앗간 집 여섯 형제 중 셋째, 아버지에 형에 동생들까지 잇단 사고·병마…순식간에 찾아온 불행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학업의 꿈…낮엔 직장, 저녁땐 학교, 밤엔 고시공부로 하루 2시간씩 자며 합격한 기술고시

쉽게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독일어도 야간에, 학부·석·박사도 모두 밤에 이룬 것들

넘어지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넘어진 채로 있는 것이 수치일 뿐…칼날 위에 서 있을 때 많았지만 후회는 없다



1999년 새만금 간척사업을 놓고 ‘개발’과 ‘보호’ 주장이 팽팽하던 때, 윤성규는 칼날 위에 서 있었다. 당시 환경부 수질정책과장으로 수질 측면에서 새만금 사업의 지속 여부를 평가해야 했다. 찬반 양론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어 과학적ㆍ기술적으로 어느 쪽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엄정하고 정확해야 했다. 조금만 헛디뎌도 사면초가에 몰린다. 그 과정에서 만든 보고서가 ‘동진강 유역 진행, 만경강 쪽 중단’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총리실에 제출된 뒤 햇볕을 보지 못한 채 묵힌다. 2001년 새만금 사업 공개토론회에서 수질보전국장 윤성규는 자신이 과장 때 만든 이 보고서를 토대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수정안은 받아들여졌고, 새만금 사업은 큰 물줄기가 바뀐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인터뷰를 앞두고 내심 걱정이 됐다. 소문대로 ‘독일병정(철두철미한 일처리와 독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독일병정이란 별명이 붙었다)’이라면 그의 스토리를 어떻게 끌어낼지 암담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그의 ‘독일병정’ 스타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외모도 한몫했다. 나잇살은 전혀 없다.

그러나 환경부 장관 취임 후 가진 첫 기자단과 식사자리에서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유쾌한 목소리로 건배사를 외쳤다. 건배의 ‘건(乾)’이 ‘말릴 건’이라며 막걸리를 ‘원샷’하고 머리 위에 잔을 털었다.

이런 윤 장관을 서울 광화문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서 다시 만났다. ‘연필 10자루(책상에 연필 10자루를 두고 수정을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 장관 아니랄까봐 꼼꼼히 메모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남들은 그를 놓고 한 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라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덤덤했다. 그저 묵묵히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독일에 ‘넘어지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넘어진 채로 있는 게 수치’라는 속담이 있다. 윤 장관에게 독일병정보다 이 속담이 딱 들어맞았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철두철미한 일처리 스타일을 두고 사람들은 그를‘ 독일병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작 그는 별명이 탐탁지 않다고 말한다. 융통성 없다는 것은 공무원에게 치명타라는 것이 그이유. 독일에‘ 넘어지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넘어진 채로 있는 게 수치’라는 속담이 있다. 윤 장관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보면 독일병정보다 이 속담이 더 들어맞는 듯 하다.                                                                                                                                   [이상섭 기자/bobtong@heraldcorp.com]


포기한 대학 진학의 꿈 그러나…

윤 장관은 여섯 형제 중 셋째다. 아버지는 충북 충주 교외에서 방앗간을 했다. 가족이 모두 생업에 달려들었다. 윤 장관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수레방아를 찧어야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진학까지는 문제가 없을 살림살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섯 명 모두가 학업을 하기 위해 윤 장관도 상고나 공고를 거쳐 빨리 취업하기를 바랐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일찍 취업하기를 바라셨죠. ‘동생이 3명인데 너(윤 장관) 하나 때문에 동생이 모두 희생되어도 좋겠느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설상가상으로 우환이 겹쳤다. 아버지가 마차에서 떨어져 다치더니, 바로 윗 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 동생은 심장판박증이 나타났고, 또 다른 동생은 씨름하다가 다치면서 뇌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집안 사정은 어려워졌고, 윤 장관은 고집을 피우기 힘든 상황이 됐다.

타협한 게 5년제 공업고등전문학교였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저렴한 학비로 고교 3년과 초급대 2년 과정을 함께 이수할 수 있도록 만든 학교였다.

그래도 대학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7급 공무원시험을 본 사람이 있을까. 윤 장관이 그랬다.

그는 “공전 졸업을 앞두고 진로 때문에 생각이 복잡했는데, 건설부 국가공무원 4급(현재 7급) 공채시험 공고를 우연히 보고, 서울에서 일하면서 대학도 다닐 수 있겠다 싶어 얼른 지원했다”면서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우수한 성적으로 붙었다”고 떠올렸다.

“건설부 공무원으로 출근했더니 사무관 3명 중 2명은 쉰살이 넘었는데, 직속 사무관 한 명은 20대 후반밖에 안된 거예요. 어떻게 젊은 나이에 사무관이 됐냐고 물었더니 기술고시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고시를 처음 알았습니다.”


“윤성규 이력서 가져와봐”

공부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그였다. 만 스무살 되던 1976년 바로 기술고시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가장 자신했던 과목의 과락으로 낙방. 다음해 한양대 야간과정에 3학년으로 편입한 후에는 정말 독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낮엔 직장, 저녁 땐 학교, 밤엔 고시공부를 하는 그야말로 삼중고였다.

“새벽 3시 일어나 7시까지 공부하고 출근했어요. 퇴근 후에는 한양대로 달려가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는 새벽 1시까지 또 공부했죠. 그렇게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버텨냈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 가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고시에 붙었지만 환경부에 몸담게 된 것은 10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처음에 난데없이 문화공보부로 발령이 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출근하게 됐다. 상공부를 원했지만 시골 출신에 야간대학을 졸업한 그를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았다.

“군대를 갔어요. 밀려서 간 자리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방법밖에 없겠다 싶었죠. 제대할 때쯤이면 그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있겠다는 계산이었거든요.”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군복무 후 그가 간 곳은 국립영화제작소였다.

기회가 온 것은 환경청이 규모를 키우던 1986년. 지방청을 만들면서 다른 부처 인력도 응모할 수 있도록 했다.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결국 무작정 당시 환경청장이었던 박판제 전 청장을 찾아갔다.

“청장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찾아갔어요. 불쑥 처들어갈 수 없어서 동네 어귀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중요한 분과 얘기 중이라며 다음에 사무실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다음날 사무실로 찾아갔지만 직접 만나지 못했다. 비서에게 이력서만 줬다.

“3개월간 연락이 없어서 아닌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오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자리가 생겼는데 청장님이 저를 기억한 거예요. 전화하고, 찾아오고 했던 그 사람의 이력서를 비서에게 달라고 한 거죠.”

윤성규의 ‘환경맨’ 운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고난을 이겨내게 한 원칙 ‘성불고(誠不孤)’

쉽게 얻어진 게 없는 삶이었다.

윤 장관은 “10~20대를 돌아보면 애초의 목표나 꿈과는 무관하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매번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면서 “삶의 만족도를 점수로 표현한다면 100점 만점에 70점쯤 될까 싶다”고 말했다.

학비 걱정과 호구지책은 늘 그를 옥죄었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길을 돌아돌아 가기도 했다.

지금의 ‘윤성규’로 있게 한 것은 ‘성불고’ 원칙이었다.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 알아줄 것이란 의미다.

“시간을 아끼고 아껴 묵묵히 실력을 쌓았습니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남들이 알아주고, 또 언젠가는 기회가 오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과 시간의 10%는 자기계발, 특히 직무와 관련된 지식을 넓히는 데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잘 지켜왔다.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의 야간과정에서 독일어를 공부한 것은 결국 기회가 됐다.

“독일어를 익히고 독일을 공부한 덕에 1988~1990년, 1995~1997년 두 차례에 걸쳐 독일에 파견돼 환경 분야를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이때의 경험이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때 참고가 많이 됐던 것은 물론이고요.”

독일어도 야간으로, 학부와 석ㆍ박사학위도 모두 밤에 이뤄졌다.

33년 3개월. 그가 공직에 몸 담았던 기간이다. 새만금 사업과 시화호 간척사업, 4대강 물관리대책 수립 등 굵직굵직한 이슈와 관련해 환경부 주무과장 또는 주무국장으로 있었다. 새만금 이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5년 중간평가가 예정돼 있고, 그때도 핵심은 역시 수질 문제가 될 것이다.



칼날 위 윤성규, 친정으로 돌아오다

칼날 위에 서 있을 때도 많았지만 국가공무원 삶에 후회는 없다.

윤 장관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고 그 족적이 보이기 때문에 국가공무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충분히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2009년 환경부에서 퇴직한 후 4년 만에 박근혜정부의 환경부 장관으로 다시 공직에 돌아왔다. 그의 공직기간도 ‘33년3개월+α’가 될 것이다.

친정에 왔으니 낯선 것은 없지만 분위기는 다소 침체된 상황이었다.

그는 “지난 5년간 환경부 직원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4대강 사업 관련 일을 했는데, 어느날 가치관이 다른 장관이 와서 다 잊고 백지에다 다시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쉬울 리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4대강 사업으로 환경부가 대내외에서 고운 시선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도 했다.

최근 끊이지 않았던 화학사고도 윤 장관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취임 이후 빈발하는 안전사고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우선적으로 주안점을 뒀다.

“수질오염은 발견이 쉬워요. 냄새가 날 수도 있고, 물고기가 폐사해서 알 수도 있어요. 수로를 통해 이동하니까 차단도 가능해요. 그런데 가스 유출은 경계가 없어요. 1980년대 인도에서 한밤중에 유독가스가 새어 나가 수많은 사람이 숨졌어요. 사업장 안전에다 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유해성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했습니다.”

화학물질 사고와 관련해 환경부는 지난주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에너지 빈국의 환경부 장관

우리는 에너지 빈국이다. 그리고 동시에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이런 나라의 환경부 장관이라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가 기침하면 경제가 고뿔에 걸리는 상황”이라는 게 윤 장관의 진단이다. 이런 상태로는 지속 가능한 국가가 될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간과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길을 지나다보면 한여름에 상점 문을 다 열어놓고 에어컨을 틀고 있잖아요. 요즘 농가를 가봐도 온실을 전기로 돌리고요. 전기가 너무 싸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원전으로 전기 생산비용이 낮아졌지만 원전이 수명을 다해서 가동을 멈췄을 때 발생한 폐로 비용 등은 하나도 적립을 안 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왜곡된 전기요금을 합당하게 바꿔 나가야 전력 남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독인의 인구는 8000만명으로 우리의 1.6배다. 국내총생산(GDP) 역시 독일이 3.5배가량 더 많다. 부동의 수출 1위 국가이며, 제조업 위주라 산업구조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독일의 전력 사용량은 우리와 16%밖에 차가 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0.7%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라며 “향후 재생에너지를 왕성하게 쓸 수 있도록 제도를 혁신할 계획”이라고 자신했다.

정리=안상미 기자/hug@heraldcorp.com

윤성규 장관이 걸어온 길

▷1958년 충북 충주 출생
▷1975년 건설부 7급 국가공무원 공채 합격
▷1976년 충주공업전문학교 졸업
▷1977년 기술고시(13회) 합격
▷1979년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1987년 환경청 수질관리과
▷1990년 독일 클라우스탈공과대 석사 수료
▷2002년 환경부 환경정책국장
▷2005년 국립환경과학원장
▷2007년 한양대 환경공학 석사
▷2008년 기상청 차장
▷2009년 한양대 환경공학연구소 연구교수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지
속가능추진단장
▷2013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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