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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장르,다문화,인터미디어시대..‘플럭서스아트’즐기며 예술을 배워볼까?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여행단의 깃발만 마냥 따라만 다니면 별반 남는 게 없다. 반면에 시행착오를 좀 겪더라도 혼자 지도를 봐가며, 구석구석을 여행했다면 한결 깊은 체험이 되는 법이다. 교육이며, 현대예술도 마찬가지다. 그저 수동적으로 앉아만 있을 경우 내게 뼈가 되거나, 살이 될 게 없다. 직접 부딪치며 체험해 봐야 무엇이든 또렷이 각인되게 마련이다. 자발성과 창의성은 언제나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백남준을 비롯해 조지 마키우나스, 조지 브레히트,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이 1960년대 독일에서 결성했던 예술그룹 ‘플럭서스(Fluxus: 흐름, 변화)’ 또한 ‘경험’을 중시했다. 이들은 예술이 창작활동인 동시에, 일상 생활의 연장이 되길 간절히 원했다.

특히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 속에 존재하는, 변화하는 예술’을 지향했다. 장르 간 경계가 없고,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으며 권위에 거침없이 도전했던 플럭서스 운동은 요즘의 현대미술이 표방하고 있는 ▷탈장르 ▷다문화 ▷인터미디어를 일찌감치 선도했던 명실상부한 ‘앞선 예술’이다.



백남준 등 일군의 작가들은 이미 50년 전에 해프닝, 이벤트, 게임아트, 메일아트를 개척하며 ‘경험을 창조하는 예술가’와 ‘공동의 창조자 관객’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거침없이 실험했다. 이들은 관객 참여 이벤트를 통해 일상 경험에서 배우는 교육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 했다.

이에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는 그 같은 실험을 오늘 이 시점에서 다시 펼쳐보자는 취지에서 특별한 전시를 꾸렸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여름기획전 ‘러닝 머신(Learning Machine)’은 창작자와 감상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없애고, 자율성을 지닌 ‘창조적 시민’이란 개념을 탄생시킨 플럭서스의 실험을 21세기 버전으로 구현한 전시다. 

플럭서스가 창조한 ‘경험으로서의 예술’은 요즘 우리가 표방하는 체험교육, 통합교육과도 맥을 같이 한다. 대화하고 탐문하기, 집단적 놀이와 게임 등은 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꿈꾸는 미래 세대에게 매우 효과적인 학습 유형이다.

‘러닝 머신’전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 중인 플럭서스 작품과 그와 관련된 현대작가의 작품 등 총 21팀의 70여 점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작품을 모두 둘러보며, 직접 참여하거나 즐기려면 최소 2,3시간은 할애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백남준이 1964년 독일 해프닝그룹의 출범을 알리기위해 제작한 포스터 드로잉은 오늘 다시 봐도 경탄스럽다. 유럽지도를 연상케 하는 작품에는 ‘출생에 동의한 아기만 태어나게 하는 진보적인 산부인과 병원’ ‘십자군전쟁 때의 정조대를 파는 상점’ ‘반등밖에 모르는 주식시장, 다우존스지수 7800’ ‘백남준이 암살당할 장소’ ‘존 케이지의 거대한 무덤’ ‘아사쿠사 로쿠자:짧은 풀밭 위에서 꿈꾸는 자리’ 등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하고, 남다른 예지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미에코 시오미의 ‘플럭서스 저울’(1993년 작)도 흥미롭다. 작가는 전세계의 지인들에게 “누군가가 저울의 한쪽에 올려둘 ‘무언가’와 균형을 이룰 걸 적어 달라”는 편지를 띄웠다. 시오미가 이렇게해서 받았던 답장을, 관객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카드와 함께 저울에 달아볼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해 타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타진해볼 수 있는 실험인 셈이다.



김용익은 자신의 옛 회화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회화는 그냥 회화가 아니다. 보관할 곳이 마땅치않아 미술대학 실기실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그림이 제자들에 의해 칸막이로 쓰이는 걸 발견한 작가는 작품의 포장비닐 위에 몇가지 글귀를 써넣었다. 그리곤 문제의 ‘칸막이’를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칸막이였던 그림에 예술적 지위를 다시 부여한 김용익은 관람객들에게 ‘예술’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자고 되묻고 있다.

작가이자 미술교육가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고(故) 박이소의 진지하면서도 재미도 있는 ‘작업 노트’,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國劇)를 만나 배우는 정은영 팀(with 심채선&박문칠)의 ‘예술가의 배움’도 예술의 교육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술관 한켠에 설치된 트램플린을 하면서 사진과 영상을 보는 안강현의 ‘스냅샷’은 낯선 이미지를 색다르게 감상하는 기회를 준다. 매일매일 드로잉을 하며 살아가는 김을의 ‘드로잉하우스’는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코너다. 



‘탁구’라는 운동행위를 기발하게 재구성한 김월식의 ‘팡펑퐁풍핑’은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 작품이다. 작가는 4대의 탁구대를 높낮이를 다르게 하거나, 가운데 환풍기를 다는 등 엉뚱하게 설치했다. 그리곤 기발한 탁구채 14종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직접 탁구를 쳐보도록 했다. 기존 탁구채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가장자리로만 탁구를 치게 한 ‘김월식표 탁구채’를 비롯해, 야구방망이, 삽, 파리채에 탁구채를 매달아 경기를 하도록 한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간에 뿌리깊게 고착된 ‘소통의 관성’을 한번 뒤집어본 작업”이라며 “관객들도 탁구를 치면서 함께 이를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 부대행사도 풍성하다. 참여작가들과 함께하는 공연과 강연, 교육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다. 관람료 성인 4000원(경기도민및 단체 50%할인), 학생 2000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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