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이렇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세종시 LH 세종특별본부 식당에서 열린 서승환 국토교통부 기자간담회 때 일인데요. 취임 100일을 맞아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마지막 순서로 “4대강으로 인해 수자원공사의 빚이 8조원으로 늘어났다. 친구수역 사업 등으로 빚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라고 질문했습니다.
서 장관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즉시 “친수구역 개발 사업으로 수공 부채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한 게 사실이다. 부산에코델타시티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고, 구리(월드디자인센터 사업) 등은 지구지정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사실 친수구역개발사업으로는 (수공의) 부채 절감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물 값을 조정하는 게 필요한데 이 부분은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 물가 당국과 협의를 해야 해 다소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조정’은 ‘인상’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누가 들어도 정부가 물값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질문과 답변의 맥락을 보면 4대강 부채로 늘어난 수자원공사의 부채 해소를 위해 친수구역개발사업으로는 한계가 있고, 물값을 올리려 한다는 입장을 밝힌거죠.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3/06/21/20130621000887_0.jpg)
기자들은 간담회 직후 “정부가 수자원공사의 부채해소를 위해 물 값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수돗물 인상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니 꽤 큰 뉴스였죠.
기사가 하나둘 인터넷에 뜨기 시작하자 국토부 담당자들이 화들짝 놀랐나 봅니다. 장관이 한 말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기자실로 달려와 해명하고 해명자료를 뿌리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해명의 요지는 “수공의 4대강 부채 해소를 위한 물값 인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장관이 단순히 원가 대비 83%에 불과한 물값을 보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의 원론적 발언을 한 것”이라는 해명하더군요.
어쨌든 물 값은 현실화할(올릴) 필요가 있는데 그게 수공의 부채와는 상관없다는 겁니다. 기사를 본 야당은 아니나 다를까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국민 호주머니로 4대강 부채를 갚겠다는 것 아니냐며 4대강에 대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왔습니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다음날인 20일 국토부는 이번엔 서승환 장관이 직접 보낸 형식으로 해명자료를 또 냅니다. 내용은 전날 뿌린 것과 거의 같습니다. 다시 한번 ‘수도요금 산정은 4대강 부채해소와 관계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다만 당장에 ‘물값 인상계획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해명 내용을 보면 어쨌든 물값 인상은 필요하다는 게 국토부의 입장입니다. 다만 그건 ‘수공의 부채해소 위한 것은 아니다’는 겁니다.
수공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값을 인상하는 수밖에 없는데 굳이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잘 알려졌듯 수공의 부채문제는 4대강 때문에 생겼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수공 부채는 2008년 1조9000여억원에서 작년말 13조7000여억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19.6%에서 121.9%로 나빠졌죠.
물값 인상 논란이 본격화한 건 이런 상황에서입니다. 당연히 물값 인상은 수공의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물값 인상 논란에 굳이 수공 부채가 원인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비슷합니다. 모두들 수공 부채때문에 물값이 오를 것이라고 하는데 국토부만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물값 인상 논란이 수공 부채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MB정권의 최대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4대강 사업은 들어간 돈에 비해 수질이나 환경 개선이 미미하고 앞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이 더 들어가야 하는 등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입찰담합 수사를 진행하는 등 국민들의 반감도 높죠. 그런데 이런 4대강 때문에 물 값까지 오른다고 하면 4대강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겁니다. 4대강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이를 함께 추진했던 현 정부에도 결코 좋을 수 없습니다. 4대강과 물값 인상을 떼어 놓으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물값은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정부 말마따아 원가 구조 문제도 있고, 수공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니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입니다. 그렇게되면 물값 인상의 원인이 4대강 때문이라는 논란은 다시 튀어나올 게 분명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게 한다고 아버지란 사실이 달라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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