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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아무때나 불러내 “밥 먹자”…상담센터서 종일 진치기도
증권사 PB들이 말하는‘ 진상고객 甲’
‘을(乙)’은 고달프다. 특히 업무적인 관계에서 ‘갑(甲)’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깨끗한 사무실에서 자산가를 상대로 투자컨설팅을 해주고 고객의 돈을 굴리는 프라이빗뱅커(PB)의 모습은 혹자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PB도 고객과의 관계에서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다. 도를 넘어선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이들도 자괴감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고객인 ‘갑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은 난감하기 그지없다.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 ‘밥먹자’ ‘운동가자’고 하면 개인적인 일정을 미루기 일쑤다. 그렇게 약속까지 미뤄가며 나가면 정작 모든 비용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증권사 PB는 “특정 종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매수했는데 손실이 나자 해당 고객이 애널리스트 이상의 보고서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면서 “부랴부랴 야근까지 해가며 상당히 두꺼운 보고서를 다음날 오전 직접 전달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사업과 관련해 사람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한 PB는 “주변의 인맥을 총동원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결국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자신을 보는 고객의 시선이 예전같지 않더라”고 전했다.

한 PB는 백발의 고객으로부터 이성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PB는 “사별했다는 한 60대 남성 고객이 ‘돌싱’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비슷한 연령대의 이성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면서 “나름 신경썼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많다며 40대로 다시 알아봐줄 것을 주문받아 당황했다”고 말했다.

상담센터에서 마치 자기 집마냥 자리를 펴는 ‘갑’스러운 고객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한 PB는 “센터에 있는 부스 한 곳을 차지하고는 하루 종일 앉아서 사무실 전화나 집기를 마치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때는 상담하러 온 고객을 아예 다른 곳으로 안내하기도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계좌만 열어놓거나 투자 금액이 적은 고객이 이러면 PB 입장에서는 더욱 밉상이다.

고객 중에는 노골적으로 VIP 대우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명절 때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나타낸 고객에게 회사 내부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결국 개인 돈으로 선물을 사서 전달하기도 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고객도 PB를 힘들게 한다.

한 PB는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고객도 이해한 뒤 투자가 이뤄져도 손실이 나면 무조건 손실 보전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투자 경험이 많고 금융지식도 해박하지만 정작 이럴 때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털어놨다.

답답한 마음에 “녹취가 돼 있으니 기록을 확인해보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그랬다가는 그 고객과 영영 작별을 고해야 한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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