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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년간의 들숨날숨…인간 이오덕이 보인다
교육·바른 글쓰기에 평생을 바친 삶
1962년~2003년까지 쓴 98권의 일기엔
세상과 맞닿아 있었던 하루하루 담겨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너희들 제발 선생질은 하지 마라. 참 선생질 못할 짓이다. 이렇게 돈 없는 아이들 졸라서 울리고, 날마다 성내고 고함치고 해야 하니 말이다. 난 이제라도 이런 선생 노릇 치우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그 돈으로 너희들 같이 돈 없는 아이들에게 공책도 사 주고, 연필도 사 주고, 크레용도 사 주고. 과자도 사 주고 싶다.”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오덕 선생의 1962년 9월 19일자 일기다. 선생은 그런 ‘선생질’을 평생했다. 이때부터 42년 동안 날마다 쓴 일기가 10주기를 맞아 ‘이오덕 일기’(모두 5권/양철북 펴냄)로 세상에 엮여나왔다. 상주의 산골학교에서 재직하던 1962년부터 세상을 뜬 2003년까지 쓴 일기는 아흔여덟권. 이오덕 문학의 수원이자 이오덕 스스로 쓴 자서전인 셈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바른 글쓰기로 평생을 살아 온 한 사람의 기록의 무게는 무겁고 조심스럽다. 

시기별로 나눠 다섯권으로 구성된 책은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산골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아이들의 삶을 보듬고 무능한 교육행정에 맞서던 때인 제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비롯, 1978년부터 1986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쓸 수 있도록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때를 담은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제2권), ‘불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제3권. 1986년~1991년),‘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제4권. 1992년~1998년)로 이어진다.

마지막 제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뜰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다.

일기의 많은 부분은 아이들과 지내는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아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아이들의 천진함과 바른 마음을 살려주려는 그의 교육방식은 교육현실의 폐단과 자주 충돌한다. 소풍 때 학생들이 싸온 도시락과 과자, 술로 점심을 때우는 교사들의 모습부터 먹고살 만한 집 아이들의 어설픈 어른 흉내내기로 꾸며진 학예회, 추운날 새벽부터 일어나 밥도 못 먹고 등교하는 먼 데 사는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각생을 벌주는 교장, 숙직실에 땔나무는 없다면서 학교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모두 사택에 가져가는 교장, 글쓰기 교육을 망치는 백일장 등 그는 잘못된 교육행정에 분개한다.

답답한 교육현실이지만 그래도 그 길을 걸어가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그는 내비친다. 

“우리말의 문제를 두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말이란 것이 우리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이다.”(1988년 2월 7일 일기에서)

“이것이 내 인생이다. 그래도 나는 내 길을 혼자 웃으면서 걸어가리라. 죽을 때까지 꾸준히 걸어가리라.”

이오덕이 70, 80년대 글짓기를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혁명적이었다. 선생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작품이나 태도를 모방하지 말고 아이들이 자신의 얘기를 제 말로 쓰도록 가르쳤다. 아이들이 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그것은 이오덕에게 아이와 가정, 사회의 건강지표였다. 

10월 유신, 5ㆍ18 광주민주항쟁, 87년 6월 항쟁 등 역사의 현장을 통과한 일기의 흔적, 이오덕이 우정을 나눴던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이원수, 문익환, 함석헌, 염무웅, 신경림 등 문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구두를 잃어버려 찾아 헤매고, 바느질과 된장찌개를 끓이며, 자신이 쓸 기저귀를 만드는 생활인으로서의 정갈한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다.

일기의 힘은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지향했으며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발자국을 쫓아가며 추체험함으로써 시간의 연결성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데 있다. 이오덕 일기는 바른 글과 아동문학, 교육의 생생한 현장을 길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회연구의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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