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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돈 · 이념 얽히고설킨 실타래…‘투명한 소통’ 이 갈등극복의 核
⑤ 대안없는‘ 원전 논쟁’
주민 생존권 직결 불구 위험성·정보 깜깜
최대 40년 수명기간 내내 갈등도 대물림
금전보상부터 核찬반 대립까지 설상가상

상대 이기려만 드는 한국인의 갈등문화
내 주장보다 상대 의견 살려주는 妙 필요
정치성 뺀 인사의 3자개입도 고려할 만




“우리 사회 갈등은 크게 ‘경제적 갈등’과 ‘이념적 갈등’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로 말미암은 갈등은 이 두 가지 갈등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보상 문제도 크고, 탈핵 주장단체들의 이념 공세도 만만찮다. 때문에 다른 어떤 갈등보다도 원전 갈등은 해결하기가 어렵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연구하는 학자 사이에서도 원전으로 인한 갈등은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갈등으로 꼽는다. 갈등 당사자 간 소통을 강화하면 한층 나아진다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람의 특수성을 고려한 갈등 해소법을 권장한다. 서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많은 권한을 공유하다 보면 주민도, 정부도, 사업자도 모두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갈등 중의 갈등, 原電=작게는 가정 내 고부간의 갈등부터, 크게는 국가와 국가 간의 통상 마찰 같은 갈등 등 우리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갈등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원전으로 인해 야기되는 정부와 주민 간의 갈등은 분명 특수성을 띤다.

오영석 동국대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원전 갈등에 대해 “주민들의 생존권과 직접 관련이 있음에도 위험성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차단된 상태이고 원전 사고가 한 번 나면 해당 지역사회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 다른 사회 갈등과 다른 외적 특징”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원전과 관련된 직접적 피해 경험자가 없다는 것도 갈등의 당사자들이 확실하지 않은 정보만을 갖고 얘기하다 갈등을 겪게 되는 원인 중 하나다. 원전의 특성이 30~40년의 수명을 갖고 있어 갈등의 주체세력이 대물림될 수 있다.

또 원전 갈등의 가장 큰 특징은 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결국 금전 문제로 내부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법 체계상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지원금 제도에서 문제점이 시작된다는 분석이다.

오 교수는 “법 체계상 원전 관련 시설이 들어오는 곳에서 주민 개인이 반대하면 정부가 보상금을 주지 못하지만 단체를 만들어서 반대하면 줄 수 있다”며 “결국 한 지역에 주민들로 구성된 여러 반대단체가 생겨나게 되고 이들이 미세한 입장 차이부터 보상액수 등으로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상적 해결책은 소통 강화, 그러나 실상은=갈등 대부분이 그러하듯 가장 좋은 해결책은 소통 강화다. 전문가들은 특히 원전을 둘러싼 정부와 주민 간의 갈등은 소통을 강화하면 풀릴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주민과의 소통으로 갈등이 해결된 사례로 한국전력공사가 2010년 2월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가 들어선 충남 연기군에 345㎸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하다 지역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던 일을 들 수 있다. 당시 한전 측은 갈등 해결을 위해 세종시 송전탑 경로 선정에 마을 주민을 적극 참여시켰다. 또 지역 주민과 한전, 환경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등 대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했다. 4년을 넘게 첨예한 대립만을 보이던 문제는 결국 9개월 만에 해결됐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한성구 송변전건설팀 과장은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태도와 진정성”이라며 “지역 주민과의 마찰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존의 사회로 갈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갈등이 이렇게 풀리지는 않는 상황.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정부 측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나 밀양 송전탑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과거 부안 방폐장이나 새만금 갈등 때와 별반 달라지고 나아진 게 없다”면서 “국가의 편의보다 시민사회의 높아진 역량과 민주화된 사회구조를 반영한 갈등 해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과 의사 결정 권한 공유해야=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수용할 줄 아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면서 “모든 갈등의 공론화가 개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특히 한국식 갈등 치유법이 적용된다. 오영석 소장은 “갈등을 대할 때 드러나는 한국인의 특징은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온정주의, 감성주의가 뒤섞여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체면’이라고 한다”며 “일단 갈등이 시작되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옳고 틀린 것을 가리기보다는 서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문제의 근본”이라고 지적했다. 즉 자신의 체면을 버릴 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체면을 올려주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안은 두 가지가 제시됐다. 첫 번째로는 3자 개입 방식이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3자를 선임해, 이들이 보다 이성적으로 일단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이다. 단, 제3자를 내세울 때 이념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정치권 인사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게 단서다.

다른 갈등 치유방법은 서로에 대한 참여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오 소장은 “원전 문제의 경우 정부나 사업자가 주민 대표들에게 해당 사업과 관련한 의사 결정 협의체에 참여하도록 개방해야 한다”며 “수많은 사례를 조사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주민들과 권한을 나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정부나 사업자는 이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폐쇄된 원전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막상 주어진 권한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주민도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분석이다. 박 소장도 “갈등이 건설적이려면 계획 수립ㆍ집행 절차나 분배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행정 절차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해 당사자인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정식 기자/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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