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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을 공무원 시험에 바치다니…“ 창조경제 전도사로 변신한 벤처 1세대 이민화 교수의 고언
“창조경제란 혁신이 보다 쉬워지는 경제구조…창조성이 돈이 되는 경제”



“청년들은 60%가 공무원이 되고자 청춘을 바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 무관용으로 창업의욕은 꺾였습니다. 노령사회,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 복지와 사회안전망 투자비용 등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은 고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은 지금 대한민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민화(60) KAIST 교수는 자못 비장하게 시작했다. 이 교수는 성장정체에 접어든 우리나라를 위기 상태로 진단하고, 이 위기 극복방안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 성장동력은 기존 산업경제의 혁신이 아니라 혁신이 쉬워지는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일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창조경제는 창조성이 곧 돈이 되는 경제”가 된다. 방법적으로는 손쉬운 창업과 제품화, 시장정착에 이은 원활한 인수합병(M&A), 그리고 재창업이다. 이 과정은 공정한 산업생태계를 기반으로 개방적이고 초(超)협력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경제민주화도 곧 창조경제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대기업의 효율과 중소ㆍ벤처기업의 혁신이 정부의 공정과 선순환ㆍ융합하는 경제가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창조경제라 할 것이다.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벤처ㆍ중소기업은 혁신을 통해 상부상조 하는 게 창조경제이자 경제민주화다.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란 용어는 사실 2001년 영국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호킨스가 정의한 창조경제는 ‘혁신에서 창조성이 실천력보다 중요해지는 경제구조’다.

그런데 경제구조가 우리와 다른 영국의 개념을 원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창조경제는 선진국의 문화콘텐츠산업에 과학기술과 ICT가 덧붙여지고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전담부서가 이끄는 형태로 추진되게 됐다. 창조경제 실행방안의 하나로 정부는 지난달 15일 ‘5.15대책(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내놓기에 이른다. 10여년 전부터 창조경제 이 교수를 비롯한 벤처1세대,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염원과 건의가 정책으로 반영된 것이다.

이 교수는 벤처기수에서 현재 창조경제 연구자이자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KAIST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초음파기술을 기반으로 벤처1호 메디슨(현 삼성메디슨)을 창업했다. 이후 메디슨은 해외수출에 성공하면서 연매출 2000억원대의, 당시로서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 벤처거품 붕괴로 부도를 맞고 2002년 메디슨을 떠날 때까지 40여개의 계열ㆍ관계사를 거느린 ‘벤처연방’을 이끌었던 벤처업계 대부였다. 

-창조경제란 뭔가

▶창조경제란 혁신경제가 한단계 더 진화한, 혁신이 보다 쉽게 이뤄지는 경제구조와 시장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효율과 혁신을 추구하며 달려왔으나 중국의 부상과 선진국의 견제 등으로 성장정체에 직면했다. 경제는 효율과 혁신에 의해 성장하는데 내부의 동력이 급속도로 약화된 것이다. 효율과 혁신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한데 우리 시장에서는 이런 생태계가 제대로 조성된 적이 없다. 경제민주화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 중심의 우리 경제체제에서 창조경제의 틀을 만들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혁신 생태계가 조성되고 창조경제는 싹이 튼다고 할 것이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왜 창조경제인가

▶젊은이들 60%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엘리트 청년들이 무사안일에 빠졌다. ‘고시낭인’이 뭔가.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 있어야 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전이 있어야만 한다. 창조는 도전에서 나온다. 젊은이들을 도전하게 해야 하는데 이게 없다. 일자리는 대부분 창업에서 나온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고품질 창업’, 이게 활발하고도 절대적으로 쉬워야 한다. 일례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창업회사 매출을 합치면 우리돈으로 3000조원(2조6000억달러)쯤 된다. 스탠퍼드대 창업회사 매출도 1조600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엘리트 청년들이 왕성하게 창업전선에 나서게 해야 한다. 사회 엘리트들이 혼자 잘먹고 잘사는 일에 몰두해서야 되겠는가. 창조경제 구현은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쉬운 창업, 가벼운 창업을 강조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창조경제가 만들어진다. 가벼운 창업은 진입장벽이 낮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뜻이다. 1985년 본인 메디슨을 창업했을 때는 의료용 모니터, 평면 키보드도 외부에서 만들어줄 데가 없어서 직접 만들었다. 메디슨의 핵심 역량은 디지털 초음파기술인데 대부분의 돈과 시간은 비핵심 기술을 구현하는데 썼다. 기술개발 이후엔 생산과 영업과 서비스와 관리를 해야 했다. 과거 창업자는 연구ㆍ개발, 생산, 품질, 유통, 서비스, 관리 등 모든 분야를 도맡아서 했다. 생산설비에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다. 진입장벽이 높은 ‘무거운 창업’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창업은 생태계 중심의 가벼운 창업이다. 스탠퍼드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창업을 꿈꿀 수 있다. 창업은 즐겁고 쉬운 작업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역량은 단일기업의 역량이 아니라 혁신생태계의 역량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에 도전해볼 수 있어야 한다.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있으면 사업화가 가능한 다양한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실제 우리도 생태계 기반의 가벼운 창업 시대가 도래했다.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는 카카오라는 플랫폼을 통해 창업했다. 비용이 과거에 비해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목숨걸고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창업을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실패는 왜 중요한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없으면 혁신과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패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창업과 같은 도전이 이뤄지고 기업가정신이 왕성해진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실패를 경력으로 인정한다. 두번 실패한 경우 투자 1순위 대상이 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실패를 통해 혁신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번 망하면 모든 게 끝이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퇴출대상이 된다. 결국엔 연대보증제도 문제로 귀결되지만 기업가정신 강연을 다니면서 청년들에게 “창업에 도전하겠는가”라고 물으면 3%만이 손을 든다. 2000년에는 이 비율이 50%나 됐다. 현재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세번까지는 재도전을 보장해준다면”이란 조건을 달면 30%까지 올라간다. 실패에서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창조경제의 필요조건이다.

-초(超)협력, 초연결, 공유경제 관계를 설명해달라

▶창조경제에서는 경쟁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한다. 변화의 본질은 단일 기업이 아닌 생태계의 혁신에서 온다. 창조경제는 분할된 기업들이 연결돼야 하나의 사업으로 완성되는 구조를 가진다. 가장 중요한 경쟁전략이 바로 초협력이다. 단일기업이 수행하던 연구기획-연구개발-생산-영업-관리 등의 경영프로세스를 여러 기업들이 협력해 하나의 사업을 완성한다. 삼성과 애플은 수많은 부품기업, 유통기업, 앱개발기업 등과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제 개별기업간 경쟁에서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것이 초협력 네트워크이자 초연결의 공생경제다. 중소ㆍ벤처가 스스로 개발한 창조적 제품으로 전세계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는 것은 고비용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다. 혁신이 느린 대기업은 시장을 제공하고 중소ㆍ벤처는 혁신을 제공하는 것이 초협력이다. 창조경제는 이런 초협력과 공유경제를 통해 진화하게 된다. 이런 경쟁 패러다임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과거 사라진 수많은 기업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첫 대책이 ‘5.15대책’이다. 평가해달라

▶정책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지만 정부의 의지가 있다는 점을 높이 사겠다. 단적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이 몸소 벤처업계를 찾아와 정책을 발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우선 엔젤투자 활성화와 투자회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M&A를 쉽게 한 점이 특히 의미가 있다. 핵심은 쉬운 기업공개(IPO)와 용이한 M&A다. 이는 창업을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투자한 돈을 쉽게 걷을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창업-투자-회수-재투자’라는 과정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족한 점은

▶시급한 것은 연대보증제도 폐지 문제다. 실패의 책임범위를 회사와 사장으로만 좁혀야 한다. 현재의 연대보증 폐지 정책은 창업자가 아니라 제3자 연대보증에 국한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어줄 대책이 빠져 있다. 창업을 연대보증제를 폐지할 때라야 비로소 활성화될 수 있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킨 창업자가 연대보증으로 인해 신용불량자 돼 재기의 기회를 잃는 것은 결국 금융권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의 손실이다. 모든 금융기관이 일시에 연대보증제를 폐지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정책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보증부터 없앨 수 있다. 대신 0.5% 정도의 가산보증료를 내게 하면 될 것이다. 가산보증료를 내기 어려운 상태라면 주식옵션으로 받아두면 된다. 그 기업이 잘 되면 보증기관도 남는 장사 아닌가.

그 다음은 최종 회수시장인 코스닥의 독립성 회복이다. 코스닥과 코스피 시장통합은 크게 잘못됐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조치다. 미국이 나스닥과 나이스(NYSE)를 통합하겠는가. 정부가 시장신뢰를 이유로 2005년 시장통합을 단행한 이후 연평균 기업공개 건수는 120개에서 23개로 급감했다. 투자 회수시장이 막혀버린 것이다. 전세계 이머징마켓은 전부 사설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양시장 분리는 그래서 필요하다.

-다시 1990년대 후반의 벤처버블과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단순히 비교해보자. 벤처버블 붕괴로 인한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2001년 당시 프라이머리CBO 2조원 가량이 발행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미회수액은 6000억원 정도다. 그런데 금융위기 당시 대기업에 지원된 공적자금은 178조원이었다. 이 중 68조원이 회수되지 않고 국민부담으로 남았다. 이후 10여년간 대기업 일자리는 11만개 줄었지만 벤처 일자리는 140만개가 늘었다. 엄밀하게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일부 벤처기업인의 비리는 분명 문제가 있고 근절돼야 한다. 한데 벤처 모럴 해저드의 책임이 정부에 있지 업계에 있지 않다. 도둑잡는 일은 정부가 해야지 업계에다 하라고 할 수 없질 않나. 일부 벤처게이트도 있었지만 대기업 총수들의 비리도 그냥 덮고 넘어가긴 힘들다.

-최근 ‘창조경제연구회’를 발족시켰다. 책도 냈던데.

▶한국의 최대 위협은 북한도 북핵도 아니라 ‘성장동력의 부재’란 사실 자체 아닌가. 2009년 스터디그룹 형태로 만들어진 창조경제연구회를 이번에 창조경제 정책이 추진되자 새롭게 사단법인으로 출범시킨 것이다. 다양한 민간차원의 창조경제 연구조직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연구모임을 결성했다. 학계, 연구소, 경영자문, 기업가, 법률가, 특허, 창업 등 각 분야의 내공을 가진 이들을 모아 정책의견도 내고 할 것이다. 연구회는 궁극적으로 영국의 ‘호킨스센터’를 앞서는 세계적인 창조경제의 ‘싱크네트워크(Think Network)’를 추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차두원 씨와 함께 출간한 ‘창조경제’(북콘서트ㆍ1만5000원)는 창조경제의 개념과 함께 정책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창조경제는 창조성인 과학기술과 창조성의 다리를 만드는 ICT와 창조성의 원천인 사회문화가 결합해 창조사회로 진입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다. 향후 5년이 대한민국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시기가 될 것이다.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은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의 흥망은 이의 구현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글=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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