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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땅은 재산가치 잃었는데…‘쥐꼬리 보상’으로 뭘 협상하나”
② 국책사업 시험대‘ 밀양송전탑’…현장 르포
고압전류 건강 위협받고 있는데
마을발전기금이 무슨소용 있나
내나이 70인데…취업우대라니

주민대표 대부분 외지인 활동가
주민과 다른 목소리 내기도

국회 중재로 전문가협의체 합의
우회송전·지중화 타당성 검토
法개정 통한 실질보상책 추진도




[밀양=윤정식 기자] “느그 한전 넘들은 여기 얼씬도 하지마라…에라 똥물이나 받아라!” 성난 밀양 할머니의 손에 들린 페트병에서 인분이 날아간다. 공사 인부는 혼비백산 흩어져 도망간다.

한국전력이 지난 20일 재개한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가 9일 만인 29일 잠정 중단됐다. 공사기간 양측이 대치하면서 16명의 송전탑 반대 주민이 실신 등으로 병원에 들려갔고, 부상당한 한전 직원도 7명에 달한다.

지난 아흐레 동안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의 아침은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었다. 매일 오전 8시면 공사인력이 출근했고 이보다 앞서 반대 주민은 각 공사현장 진입로에 집결해 농기계나 혹은 인간 바리케이드를 구축했다.

이제 그 갈등의 사슬을 끊을 토대가 마련됐다.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통상ㆍ에너지소위에서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김준한 공동대표가 참석해 국회가 제시한 중재안에 서명했다.

▶주민 실질적 보상 원해=한전의 공사 강행 기간 중 반대주민의 성지로 불렸던 곳이 있다. 가장 강성 주민이 모여 있는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이다. 지난 20일과 25일 평밭마을 입구 움막에서 취재진과 만난 반대주민은 하나같이 한전의 공사 재개와 관련, 주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모(71) 할아버지는 “한전은 공사를 하면서 우리와 보상안에 대해 협상하겠다고 했는데, 자기들은 원하는대로 할 거 다해가면서 무슨 보상을 해주겠다는 거냐”고 말했다.

단장면 바드리 송전탑 공사 대치 현장에서 만난 최모(80) 할머니도 “보상해준다고 마을발전기금을 수억원씩 가져다 줘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며 “이미 송전탑 때문에 땅은 재산가치가 사라져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무조건 송전탑 건설을 막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입을 모아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주민과 다른 소리 내는 주민대표=현재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거주민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표해 언론 등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이 아니다.

실제로 현장에는 주민이 아닌 전교조 출신, 금속노조 출신 활동가가 할머니ㆍ할아버지 주민을 대표해 공사 저지 투쟁 계획을 수립하는 등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계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765㎸ 고압 송전선로가 세워지면 발암 가능 물질이 생성돼 주민 건강권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데다, 100m가 넘는 철탑으로 인한 심리적 위압감과 경관 훼손 등 피해를 주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면서 “주민이 765㎸에서 345㎸로 전압을 낮추고 지중화하라는 등의 대안을 낸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대치 현장에서 만난 장모(72) 할아버지는 “송전선 지중화 외에는 반대주민이 내놓을 대체안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중화가 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쥐꼬리만한 보상으로 마치 먹고 떨어지라는 식의 태도로 뭘 협상하려는 거냐”며 “취업 우대니 서울서 자녀들 기숙사 이용하게 해주겠다는데 아무 해당 사항도 없다”고 역정을 냈다.

한전이 지금껏 보상의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었다는 증거다.

실제 현장에 거주하는 주민은 송전탑을 통해 전송되는 에너지의 원천이 수력발전인지 원자력발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대형 송전탑이 주민의 건강과 생활에 해가 된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법 고쳐서라도 실질적 보상=뒤늦게나마 정치권의 중재로 정부, 밀양 주민, 국회 추천으로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체별로 3명씩 9명으로 구성돼 40일간 가동된다. 국회 추천도 여당, 야당, 여야 합의로 한 명씩 3명이 추천될 정도로 공정성에 만전을 기했다는 평가다.

협의체는 송전탑 건설의 대안으로 주민이 제시한 기존 선로를 활용한 우회 송전방안과 지중화 작업을 통한 송전방안의 타당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진현 산업부 2차관은 “정부도 전문가협의체의 결정을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한 것은 갈등구조를 풀지 않고서는 밀양에 송전탑을 세운다 해도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발단이 됐다”며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보상안 관련 법안도 함께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밀양뿐만 아닌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송전탑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대화를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보상만이 유일한 돌파구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국회와 협의해 6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실질적인 보상이 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 ‘실질적 보상’이란 게 현재 법체계서는 불가능한, 사실상 개별보상을 하는 쪽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향후 보상안을 둘러싼 현안을 한전이 주민대표가 아닌 주민과 직접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가 사태 해결의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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