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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솔뮤지엄 개관 열흘…"느림과 쉼표의 미술관" 에 예상밖 호응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이런 미술관을 기다려왔던 것일까?
강원도 원주시(문막) 오크밸리에 들어선 한솔뮤지엄(관장 오광수)이 지난 16일 개관한 이래 관람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특히 지난 석가탄신일 연휴에는 주차장은 물론 진입로까지 차량이 줄을 이으며 관람객이 성시를 이뤘다. 워낙 불편한 입지인데다, 개관초기여서 1일 관람인원을 300~400명선으로 예상했으나 이를 2,3배 넘게 뛰어넘으며 큰 활기를 띄고 있다.

뮤지엄을 찾은 관람객들은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며, 모처럼 여유를 만끽했다”,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도 다녀왔지만 더 새롭고, 더 멋지다. 한국에 이런 근사한 미술관이 생겼으니 정말 반갑다. 계절마다 찾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미술관을 꼼꼼히 둘러본 한 미술대학 교수는 “독일의 한 잡지가 세계 각국의 미술관을 대상으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미술관 100’을 꼽았다고 하던데 한솔뮤지엄도 곧 이 리스트에 오르지 않겠느냐? 백남준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미술의 우수성을 서양의 주요작품과 함께 내세운 측면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자연을 품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 디자인=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 7만2000㎡(2만1780평)의 너른 부지에 세워진 한솔뮤지엄은 답답한 도심이 아니라 사방이 탁 트인 산자락에 세워져 ‘청명한 감동과 힐링’를 선사한다.
한솔뮤지엄의 가장 큰 특징은 시원한 산 정상(옛 산악자전거장)에 위치한 야외형 미술관이란 점이다. 해발 275m로, 서울 남산 보다 높은 지대다. 따라서 평지에 위치한 뮤지엄과는 달리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꽃내음을 느끼며 예술품을 음미할 수 있다

건물의 설계자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72).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地中)미술관과 이우환미술관, 이탈리아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제주 본태박물관을 비롯해 일찌기 여러 뮤지엄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합일을 이루는 건물을 디자인했던 안도 다다오의 특성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건물들은 모두 나즈막하다. 물과 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기법 또한 그대로 적용됐다.
 
한솔뮤지엄 스톤가든 초입에 설치된 조지 시걸의 작품.

안도는 모두 다섯파트로 이뤄진 미술관의 전체구조를 한꺼번에 드러나게 하지 않았다. 오붓하니 기다란 오솔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비로소 하나씩 수줍게 드러나도록 했다. 느림과 쉼표의 미학을 추구한 것.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자작나무숲, 워터가든, 그리고 미술관본관은 막힌 듯 열려 있고, 감추었다가는 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대자연에서 막 가져온 듯한 큼직큼직한 돌(경기 파주석)로 외관을 마무리한 건물은 성벽을 연상시킨다.

성벽을 돌아서면 붉은빛 패랭이꽃이 핀 플라워가든이 눈에 들어오고, 이어 우아한 자작나무 숲이 반기는 식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긴 회랑과 복도를 돌아 전시실을 보고 나오면, 찰랑찰랑 물의 정원이 이어진다. 알렉산더 리버만의 진홍빛 대형 금속조각이 자리한 워터가든을 지나면 다시 또다른 중정과 실내가 기다린다.
안도는 이번에 지극히 한국적인 실험도 했다. 신라고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둥근 봉분의 스톤가든이 그것. 투박한 돌무덤들 사이에는 헨리 무어의 저 유명한 인체조각과 베르나르 브네, 토니 스미스의 조각이 숨바꼭질 하듯 배치돼 있다. 독특한 감성이 숨쉬는 산상 미술관은 안도 건축의 또다른 버전으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소통을 위한 단절’을 추구하는 힐링 미술관= 한솔그룹(회장 조동길)이 8년여의 준비 끝에 오크밸리 내에 연면적 5445m² 규모로 조성한 한솔뮤지엄은 자연과 건축, 예술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다. 말 그대로 전원형 미술관이다.
오광수 관장은 “진정한 소통을 위해선 때론 단절이 필요하다. 익숙한 것들과 멀어질 때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며 “빠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느림과 쉼표’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주는 미술관을 지향할 것”이라고 했다. 


한솔뮤지엄은 컬렉션의 질과 양도 대단한 수준을 자랑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85)이 40여년 넘게 수집해온 국내 근현대미술품및 종이작업, 해외미술품은 괄목할만하다. 이 고문의 호를 따 ‘청조컬렉션’으로 불리는 수집품 목록에는 국민화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의 작품은 물론이고, 정규 이쾌대 최욱경 등 여타 미술관에서 접하기 힘든 한국 근현대 작가의 수작이 대거 포함돼 있다. 국립미술관 등에 가도 불과 한두점 정도만 볼 수 있는 박수근의 유화를 다섯점이나 한자리에 볼 수 있는가 하면, 미술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교육적 차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또 작고작가 이대원, 박고석 화백의 초기작도 다수 보유 중이며, 종이를 활용해 작업하는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컬렉션해왔기에 앞으로의 기획 전시가 기대되고 있다.
해외작가 작품의 컬렉션 또한 도드라진다. 스톤가든에 놓인 1000만달러를 호가하는 헨리 무어의 대형 브론즈 조각(인체 조각)을 비롯해 자코메티, 토니 스미스, 베르나르 브네, 조지 시걸의 조각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모두 4개 파트로 조성됐다. ‘플라워가든’은 5월부터 9월까지 붉은 꽃잎을 연달아 피우는 패랭이꽃 80만주와 숲의 귀족인 자작나무 380주로 이뤄졌고, ‘워터가든’은 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고요한 물의 정원이다. 또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가든’과 청조갤러리와 페이퍼갤러리가 들어선 ‘미술관 본관’으로 꾸며졌다. 이에따라 총길이 700m, 관람거리 2.3km에 달하는 뮤지엄을 돌다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청명한 공기,물, 돌과 함께 예술을 즐기는 체험은 대도시에선 꿈꿀 수 없는 것.

한솔뮤지엄은 개관전으로 ‘A Moment of Truth(진실의 순간)’이란 주제로, 제지가 모태가 된 기업답게 종이의 역사와 의미를 예술로 찾아본 전시를 꾸몄다.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담은 국보와 유물의 전시와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회화와 드로잉 100여점을 내걸었다. ‘페이퍼 갤러리’에선 대방광불화엄경(국보 277호) 등의 문화재와 다양한 종이공예품을 볼 수 있다. 


▶어둠까지 작품이 되는 제임스 터렐 관= 한솔뮤지엄은 ‘세계를 매혹시킨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70)의 4가지 작품을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관도 꾸몄다. 일찌기 뉴욕의 휘트니, MoMA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올여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준비 중인 제임스 터렐의 환상적인 빛의 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빛의 산란을 이용해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겐스필드’ ‘웨지워크’, 둥근 돔 형태의 전시관에서 일몰(또는 일출)을 인공의 빛과 함께 감상하는 ‘스카이스페이스’ 등의 작품은 벌써부터 미국, 일본 등지에서 관람문의가 올 정도로 화제다.

터렐의 대표작 4점을 퍼블릭한 공간에 조성한 것은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물다. 일본 나오시마 섬의 지추미술관이 제임스 터렐 작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20년 전 버전이어서 한솔뮤지엄의 작품이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평가된다. 전시관및 완성도 등에서 완벽함을 추구한 점도 돋보인다. 작가인 제임스 터렐 또한 ‘이번에 새로 조성된 한솔의 전시관은 내 작품을 보여주기에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매우 만족해 했다는 후문이다. 제임스 터렐의 숭고한 작품을 가장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일몰 프로그램은 예약을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한솔뮤지엄 관람료 성인 1만2000원. 어린이 7000원.(터렐관 별도. 본관과 터렐관을 동시 관람할 경우 성인 2만5000원). 월요일 휴관. 033-730-9000 

[사진제공=한솔뮤지엄]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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