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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공통화폐’ 이성을 다시 찾아라
마이클 린치 美코네티컷대 교수가 지적하는‘현대사회 감성쏠림현상’…정반대 개념 아닌‘동전의 양면’ 공존원리로 접근·분석
창의력과 감성지수가 마치 동의어처럼 쓰이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는 힘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면서 이성은 폐기처분된 것처럼 보이는 게 현실이다.이는 현대심리학과 뇌과학의 발달로 선택이나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밝혀지면서 이성은 일상에서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 과학이 사용하는 방법은 신뢰할 수 없다는 회의론이 깔려있다. 삶과 밀접한 문제를 다루게 될 때 이성보다는 종교나 그 밖의 권위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다.

마이클 린치 코네티컷대 교수(철학과)는 감성이 시대와 호흡하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지만 일관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현대사회의 감성 쏠림현상에 우려를 표명한다.

린치 교수는 최근 펴낸 ‘이성예찬(원제 In Prase of Reason)’에서 이런 현대사회의 인식의 문제를 꿰뚫으며 감성일변도가 시민사회의 기반인 민주주의를 흔들어놓을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감성에 내재된 모든 것이 자의적이라는 생각은 시민사회의 핵심이 되는 원리, 곧 하는 일에 대해 동료 시민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원리를 손상한다고 본다. 시민사회는 이유를 제시하고 탐구하고 질문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충분히 논의해서 해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가 잘 작동하는 사회는 일을 잘하기 위해 그 기준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기 마련인데, 이런 기준의 가치에 대해 포기할 경우 그 사회는 단지 술수를 잘 부리고 권력을 키우려는 게임논리만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드류 웨스턴이 내놓은 재미있는 실험에 이런 게 있다. 웨스턴은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참가자들에게 존 케리와 조지 W. 부시의 모순적인 진술들을 똑같은 개수만큼 보여준 뒤 어느 쪽 진술이 정말 모순적인지 물었다. 뇌를 관찰한 결과, 정치적으로 열정적인 사람들은 상대후보가 압도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진술을 하는 데 비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는 그런 진술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참가자들의 뇌는 자신이 지지하는 부보의 모순된 진술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갈등과 불편함을 경험하지만 재빨리 감정적인 갈등조절을 관장하는 신경중추가 믿음을 고용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에 추론을 관장한다고 생각되는 신경 중추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참가자가 최종 결론을 내렸을 때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긍정적인 감정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돼 실제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결과는 이성의 역할이 지닌 가치를 한방에 날려보내는 듯하지만 린치 교수는 이성이 그렇게 단순하게 기능하지 않는다는 걸 역사적으로 고증해나간다.

 
“이성에 대한 회의론은 계몽주의에서 진정으로 고무된 생각, 곧 우리는 동료 인간들과 이성이라는 공통 화폐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만든다.(…) 동등하게 주장되는 권리에 대해서 동전이 서로 권리를 주장한 적이 있는가. 동전의 존재 가치에 대해 옮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앞서, 그 둘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제시해야 한다.”(본문 중)

린치 교수는 플라톤과 스토아학파의 “이성은 감성의 마부”라는 논리와 흄의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논리를 대비시키고, 칸트와 베르그송의 “직관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주장, 데카르트의 “모든 믿음을 거부하라”는 회의론을 거쳐 포스트모던시대의 “믿음의 근거없음을 그냥 인정하고 계속가기”까지 이성과 감성, 믿음과 경험의 인류의 오랜 탐색을 차근 차근 훑어내려온다.

이를 통해 린치 교수가 강조하려는 것은 쫓겨난 이성을 다시 곧추 세워 둘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다. 즉 감성과 이성은 동전의 양면으로 둘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붙어있다는 말이다. 이는 린치 교수가 말하는 건축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린치 교수는 이성의 근본원리들은 건물의 홍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홍석은 아치의 중앙마루에 있는 쐐기모양의 돌이다. 아치는 이 돌이 없다면 무게를 지탱할 수 없고 무너지고 만다. 그렇지만 이 돌은 혼자서는 아치를 지지할 수 없고 다른 돌들도 제자리에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린치 교수의 목소리는 경고와 희망을 담고 있다. 이성에 대한 수용으로부터 너무 하락하면 사회가 자신만의 방식을 되찾기는 불가능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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