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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해준> 문화융성의 진정한 토대
문화융성은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지표임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문화의 생산과 향유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도시공동체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성미산마을’엔 작은 극장 하나가 있다. 1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성미산마을극장’이다. 한국의 극장 시스템이 대기업 중심의 대형 멀티플렉스로 바뀌어 이젠 지역의 독립적인 극장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주 독특한 곳이다. 6~7년 전 주민들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선 마을의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한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으고, 인근지역 상인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2009년 개관했다.

소박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 극장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줄 수 없는 엄청난 선물을 주민들에게 안겨주었다. 주민들로 구성된 밴드와 노래 모임, 연극 동아리들이 만들어져 공연을 하고, 지역 어린이들이 예능을 발표하고, 영화를 상영하고, 도시에서 사라진 성년식이 주민들의 참여 속에 열리고, 육아와 가족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갖는 등 주민들의 소통공간이 됐다. 숨겨져 있던 주민들의 문화역량이 드러나면서 지역 문화활동의 터전이 됐다. 주민들의 교류를 확대하며 마을을 되살려내는 역할을 했다.

이 마을극장이 최근 재정난에 봉착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극장이 사회적기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정부 지원이 끊긴 데다 운영인력 일부가 빠져나가면서 존폐 위기에 내몰려 있다. 주민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고 회생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순수하고 소박한 마을 주민들의 꿈이 꺾일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현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의 주요 지표로 내세우면서 정부 산하기관들이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연속 토론회를 열면서 현장의 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기본적인 정책방향에서부터 문화복지, 지역문화, 국제문화교류 등 국민행복을 증진하고 문화강국 실현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대규모 새 문화예술정책 보고대회도 열 계획이다.

문화융성은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지표임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문화의 생산과 향유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형해화된 공동체를 복원함으로써 생활공간을 문화의 온기가 흐르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곧 문화융성과 국민행복의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성미산마을극장처럼 오로지 문화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한 귀중한 자원이다. 약간의 관심과 지원으로도 문화의 꽃을 활짝 피게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가무를 즐기고, 노동과 놀이, 이웃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유전자(DNA)를 갖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도 이러한 유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압축성장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발현되지 못했던 국민들의 문화 DNA를 끌어낼 수 있도록 현장과 소통하고,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풀뿌리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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