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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석 교수, ’춘추좌전’ 국내최초 완역, “덕이 요령을 이긴다는 거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나는 1차산업 역할을 하는 거예요. 쌀농사를 지어놓으면 다른 이들이 그걸로 웰빙과자도 만들고 힐링식품이라고 팔기도 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거죠. 모노레일 같은 인생이랄까, 하늘이 낸 길을 묵묵히 갈 뿐이죠.”

중국 사서이자 유교경전인 ‘춘추좌전’(春秋左傳ㆍ전 6권 동서문화사 펴냄)을 국내 최초로 완역해낸 임동석(64) 건국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국내 완역작업의 의미를 이렇게 달았다. ‘임동석중국사상 100’의 120권째로 펴낸 ‘춘추좌전’은 노나라 좌구명(左丘明)이 공자가 쓴 ‘춘추’를 해설한 책이다. 노나라 242년 역사를 기록한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편년체 사서인 춘추를 쓰면서 공자는 날짜와 한 줄의 헤드라인만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여름 5월, 정백이 언에서 단을 이겼다’ 식이다. 이런 문장이 1861개다. 좌구명은 이 암호 같은 문장을 앞뒤 맥락을 지어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렇게 풀어쓴 글자 수가 19만6800여자에 이른다. 임 교수는 그 방대함과 비밀번호를 숨겨놓은 문장의 어려움 때문에 춘추좌전 완역을 최근에야 끝냈다. 242년의 얽히고 설킨 수많은 제후국들의 사건과 족보가 뒤얽힌 경대부들의 가계, 신하와 적이 무시로 바뀌는 끝없는 반전의 인간군상, 욕심과 배신의 굴레 속에서 날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워낙 복잡해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8년여를 매달렸다.

“‘미언대의’(微言大義)라고, 지나가는 말에 깊은 뜻이 있는 거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아. 밤새 끙끙대다 출처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춘추’에는 한식의 유래를 담고 있는 계자추 이야기. ‘결초보은’ ‘도강소적’ ‘순망치한’ 등 우리가 잘 아는 고사가 적지 않다. 

임동석 건국대 교수.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그의 중국 고전 완역작업은 1978년 대만 유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한구절 한구절 의미를 찾아 밝혀내면서 원고가 쌓였지만 출판해주는 곳이 없었다. 중국 고전 원문을 해석한 책을 누가 읽겠냐는 거였다. 그걸 풀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덧붙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책을 내자는 권유가 있긴 했지만 그건 그의 영역이 아니었다.

아내한테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평생 작업해 놓았는데 이렇게 원고를 쌓아놓으면 뭐하겠냐. 사비를 들여서라도 내고 싶다 했더니, 그럼 집을 팔아서라도 내자고 선뜻 응해줬다. 그러다 출판사와 연이 닿아 2009년 논어를 시작으로 현재 모두 125권을 냈다.

그는 35년간 한결같이 아침 5시에 도시락 싸들고 학교에 나와 저녁 7시까지 반복작업을 해오고 있다. 너무 힘들고 지쳐 ‘내가 왜 이 짓을 하나?’ 후회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넘어설 때마다 묘한 기쁨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 화전민 생활로 배고픔과 나뭇짐을 지고 패는 노동의 고통에 몸서리쳤지만 철리도 깨쳤다. “당연한 고통은 참고 넘겨라. 그것이 이치에도 맞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세상의 인정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길을 한눈팔지 않고 걸어온 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중국 고전은 동양 인문학의 보고인데 국내엔 사서삼경 정도만 완역 소개되는 게 현실이다. 임 교수는 공자시대부터 명ㆍ청대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전들을 발굴, 소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펴낸 임 교수의 중국사상 100에는 생소하지만 우리 문화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책들이 많다. 지식과 지혜를 담은 중국 고전 입문서 격인 ‘몽구’, 효도의 고사를 풀어놓은 ‘이십사효’, 위정자의 폭정과 비리를 격언이라는 표현 형식을 빌려 훈계하고 경고하기 위해 찬술한 ‘격언력벽’, 중국에서 가장 널리 이용돼온 한문학 입문서인 ‘삼자경’, 당대의 생활상과 사고의 세계를 담은 ‘당시삼백수’ 등이 포함돼 있다.

그의 작업은 중국교 수들도 놀라워한다. 우선 방대한 양에 놀라고, 다른 하나는 참고자료 표기에 감탄한다. 그의 저술은 중국 및 일본에서 나온 책을 전부 교차 비교해 뜻을 확정하고 참고자료를 모두 표기하고 있다. 또 어려운 옛말의 뜻을 별도로 붙여 사전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임 교수는 ‘춘추좌전’의 20여만 자를 요약하면 한마디로 ‘요불승덕(妖不勝德)’이라고 말한다. 덕이 결국은 요령, 요괴스러움을 이긴다는 말이다.

“고전에서 하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에요. 정도를 살라는 거죠. 조금 힘들고 지금 즐겁지 않고 빠르지 않더라도 바른 길을 가라는 얘깁니다. 가다가 잘못됐다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야 해요. 포장해서 넘어가면 나중에 결국 무너집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면 두려울 게 없죠. 고전은 훌륭한 치료약이에요. 특히 힘들 때 읽으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mee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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