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안상미 기자]국내 벤처기업 A사는 지난해 외국기업 B사에 100억원에 인수됐다. 지분율이 57%였던 대주주는 57억원의 대금을 받았지만 16억원의 증여세와 7억원의 기타 세금을 내고 나니 손에 쥐는 것은 34억원 뿐이었다. 기술력 등 시장에서 평가한 기업의 가치와 상속증여세법에 따른 회사 장부가치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대금은 몇 번에 걸쳐 받지만 세금은 한번에 내야 하는 탓에 오히려 빚을 지는 상황까지 왔다.
미국은 다르다. 지난해 소프트웨어업체 인스타그램은 10억달러(약 1조원)를 받고 페이스북에 인수됐지만 대주주의 증여세는 제로였다.
정부가 15일 내놓은 벤처대책은 ‘창업→성장→회수→ 재투자ㆍ재도전’이라는 벤처 생태계 선순환 구도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초기ㆍ창업기(0~3년)와 중간ㆍ성장기(4~9년), 회수ㆍ성숙기(10~15년)로 구간을 나눠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 금융 지원 등 대책을 마련했다.
▶엔젤투자 활성화=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 방법을 기존 융자에서 투자위주로 바꾸기 위해서는 벤처 1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성공해 회수한 자금을 다시 벤처ㆍ창업기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국내 엔젤투자 규모는 지난 2011년 기준 296억원으로 지난 2000년 5493억원의 8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유인책은 세제 혜택이다. 먼저 일정기간 내에 벤처기업 등에 재투자하는 경우 회수자금에 대한 양도소득세(10%) 납부는 재투자 지분을 처분할 때까지 미뤄진다.
또 엔젤투자금 5000만원까지는 소득공제 비율을 기존 30%에서 50%로 대폭 확대한다. 이에 따라 연간 5000만원을 투자하는 엔젤투자자는 380만원의 추가 절세혜택을 볼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정책금융 지원대책도 마련했다. 민간과 정부가 합작해 5000억원(민간 3500억원, 정책금융 1000억원, 모태펀드 500억원) 규모의 ‘미래창조펀드’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펀드는 성장성 높은 벤처ㆍ창업기업에 집중 투자하되 설립 3년 이내의 초기기업 투자에 2000억원을 배정하고 나머지는 후속투자에 활용할 방침이다. 총 지원규모는 기존 지원과 합쳐 3조3139억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일반인도 창업기업에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펀드 제도를 법제화해 온라인 거래소(펀딩 플랫폼)이 연내 만들어진다.
정부는 벤처 1세대 등 성공 기업인이 창업기업들에 재투자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고 투자처를 찾는 유동자금을 창업기업으로 유도할 인센티브가 부족해 창업초기 투자 여건도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M&A 활성화로 회수시장 확대=벤처기업의 성장ㆍ회수단계에선 정부의 M&A 활성화 대책이 눈에 띈다.
지금은 벤처기업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10년 이상 걸리는 기업공개(IPO) 뿐이라 자금이 제대로 흐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성장 단계에서는 기술혁신형 인수ㆍ합병(M&A) 때 매수기업에는 법인세 감면 혜택을, 매도기업에는 증여세 부담을 완화해주고 M&A 절차와 부담을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회수 단계에서는 회수금 재투자 때 양도세 이연 등 재투자 유인을 확대하며 코넥스를 신설하고 코스닥 상장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향후 5년간 벤처ㆍ창업 생태계로 유입되는 투자자금이 당초 전망치인 6조3000억원에서 4조3000억원이 증가한 10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벤처 기업의 매출과 고용은 각각 1.7%포인트, 0.8%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세수 측면에서도 벤처기업 성장으로 향후 5년간 1조6000억원의 순증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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