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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 이해준의 '희망가족' > 시끌벅적한 ‘피셔맨스 워프’…마치 파리 관광지에 온듯한 착각이
<49> 2박3일간의 미국 서부 패키지 투어…LA~샌프란시스코
땡! 땡! 땡! 트램타고 달리는 정취 남달라
부자들의 성역 ‘17마일 도로’는 그림 같아

숙소도 음식도 너무 훌륭했지만
패키지여행은 여행자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쏜살같이’ 지나간 美 서부여행 아쉬움만




[로스앤젤레스=이해준 문화부장] 그랜드캐니언 여행을 마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렌터카를 반납한 다음,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동해 다시 암트랙을 타고 8시간 달려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했다. 3단계에 걸친 미 대륙횡단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열차 시간만 60시간이 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대장정이었다. 미국을 떠나기에 앞서 서부지역을 돌아보는 일정만 남았다.

사실 미 서부를 어떻게 돌아볼지 고민이 많았다.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 등 동부처럼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할 수도 있지만, 여행 정보와 코스 등을 알아보다가 패키지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치기도 했지만, 그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보는 방법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많은 한국 여행사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해 시카고에 머물면서 예약을 마쳤다.

▶요세미티의 웅장함과 샌프란시스코의 낭만=서부투어는 LA에서 출발해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보고, 태평양 연안을 타고 내려오면서 페블비치 고급 주택가와 골프장, 덴마크 민속마을 솔뱅 등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코스다. 이번 세계 여행에서 다국적 여행자들과는 여러 차례 투어에 참가했지만 한국인 관광단과의 여행은 처음이어서 과연 어떨지 궁금했다.

첫날 오전 LA를 출발,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태평양 사이에 놓인 거대한 밸리지역을 관통해 첫 숙박지인 프레즈노까지 가는 것이 주요 일정이었다. 넓은 포도밭을 비롯한 농장이 이어졌고, 미국 최대 곡창지대라는 베이커스 필드는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둘째 날 오전에 요세미티로 향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서쪽 사면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거대한 화강암과 울창한 숲, 계곡, 호수 등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198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자이언트 세콰이어 숲이 나타났다. 높이가 평균 120m에 달하고, 굵기는 몇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백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들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생명의 위대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그 너머로 어마어마한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요세미티 폭포가 버티고 있었다. 상단과 중간, 하단 등 3단계 폭포의 높이가 웬만한 산에 해당하는 740m로, 미국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5번째로 긴 폭포다.

가장 유명한 곳은 거대한 화강암 바위다. 엘캐피탄(El Capitan)은 높이가 1000m에 달해 암벽 등반가들이 꼭 오르고 싶어하는 곳이다. 천천히 걸어서 폭포 가까이 다가가 위를 올려다보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 거대한 호수와 바위, 낮에도 컴컴한 숲이 펼쳐지지만 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요세미티에 왔다 갔다는 징표는 남긴 것이다.

요세미티에서 3시간30분 정도 달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이전에도 여행한 적이 있지만, 역시 샌프란시스코는 낭만이 넘치는 도시였다. 1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옛 트램(케이블카)을 타고 고풍스런 건물과 차이나타운, 금융타운을 돌아본 것은 멋진 경험이었다. ‘땡! 땡! 땡!’ 울리는 경적은 물론 제동장치 등을 손으로 작동하고, 흔들흔들 하면서 천천히 달리는 정취가 남달랐다. 샌프란시스코의 멋은 뭐니 뭐니 해도 선착장인 피셔맨스 워프의 흥성거리는 분위기와 전설적인 감옥인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수교인 금문교다. 선착장에는 도떼기시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 흥성거렸다. 게와 랍스터 같은 해산물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항상 붐비는 인도나 파리의 관광지를 연상시켰다.

금문교엔 안개가 주탑을 반쯤 휘감고 있어 색다른 풍취를 자아냈다. 총 연장이 2825m, 주탑의 높이가 227m에 달하는 현수교로, 1930년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능으로 만든 기념비적인 다리다. 위대한 인간정신과 기술의 승리의 현장이었다.

 
샌프란시스코와 북쪽의 머린 카운티를 잇는 금문교의 227.5m 높이 주탑 중간에 구름이 걸쳐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페블비치에서 본 미국=셋째 날 태평양 연안의 몬테레이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90㎞ 정도 남쪽에 떨어져 있는 작은 해변마을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해안에 안개가 잔뜩 내려 깔려 아름다운 해변은 구경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해가 나지 않고 바람이 부니 온도가 뚝 떨어져 쌀쌀했다. 안개와 바다, 갈매기, 바람이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몬테레이를 출발해 가까운 페블비치의 ‘17마일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미국의 최고 부자들이 거주하는 부촌의 메인 도로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에 최고급 저택들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유명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 스포츠 스타, 기업인, 재력가 등 부자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든 것이다. 외부인은 입장료를 내야 들어올 수 있는 사유지이기도 하다. 가장 잘사는 나라인 미국에서도 최고 부자들의 세계인 셈이다. 하지만 마냥 즐겁다기보다는 나와 다르다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17마일 도로를 따라 페블비치 골프장에 도착했다. 1919년 건설된 골프장으로, 태평양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장이다. 회원제가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있는 대중 골프장, 즉 퍼블릭이라는 것도 색다른 점이다. 매년 미국프로골프(PGA) 경기가 열리는 유서 깊은 곳이다. 퍼블릭이지만 가격은 아주 비싸다. 골프장에 붙어있는 콘도에 머무는 고객에게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비용이 10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세계 골프 애호가들이 샷을 휘두르기를 희망하는 곳이다.

페블비치에서 남쪽으로 3시간 정도 달리니 덴마크 민속마을인 솔뱅이 나타났다. 덴마크의 아름다운 전원마을을 가져다 놓은 듯한 맵시 있는 마을이었다. 가족과 함께 들렀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나 안데르센의 고향인 오덴세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덴마크 민속마을을 방문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갔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각국의 진짜배기 순도 100%의 고유 문화를 만나고자 하는 것인데, 미국에 와서 약간 상업적으로 덴마크를 본떠 만든 ‘짝퉁 마을’을 보는 게 마음에 걸렸다.


▶배낭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차이=솔뱅을 끝으로 2박3일의 미 서부 그룹여행이 끝났다. 사실 이들 지역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지금까지의 여행 속도로 본다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1주일~10일 정도는 필요한 여정이었다. 거의 찍듯이 돌아본 셈이다.

사실 이 투어는 아주 편안한 여정이었다. 숙소를 찾기 위해 집채만한 배낭을 메고 방황하지 않아도 되고, 식당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뒤지고, 여행자 안내센터에 들러 지도를 받고 잘 통하지도 않는 언어로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아도 됐다. 숙소는 지금까지 묵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고, 식사도 풍성했다. 비용도 훨씬 덜 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첫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인도와 유럽, 남미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다국적 여행자들과 어울려 투어를 했지만, 모두가 ‘처음 만나는 친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들과 여행을 했지만, 대부분 가족이나 친지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나처럼 혼자 참가한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둘째는 껍질만 보는 여행 같다는 느낌이었다. 여행지의 아름다움이나 멋에 깊이 빠지지도,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이 되지도 못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힘들게 물어물어 찾아가 발견한 작은 것이 가이드의 끝없는 설명보다 큰 감명을 주었다.

아무리 호텔이 편해도 다국적 여행자들로 붐비고, 서로 여행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허름한 호스텔이 그리웠다. 확실히 여행자들이나 현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탐험하듯이 더듬어 가는 여행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대적이고, 편리함을 좇는 패키지여행은 오히려 여행자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다음에 다시 선택하라면 여러 곳을 다니지 못하더라도, 더듬이처럼 다니면서 편견을 쌓을지라도 스스로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이 주는 진짜 맛은 배낭 하나와 지도 한 장에 있었다. 자신이 흘린 땀이 있어야 작더라도 성취의 보람이 있고, 적절한 결핍이 있어야 만족이 있는 것이다. 그게 행복의 방정식 아닐까.

LA에 이틀 더 머물면서 할리우드 거리와 코리아타운, 레이건 기념관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미국 여행을 끝냈다. LA에 머물면서 지인들을 만나고, 한국인들과 그룹투어에 참가하고, 한국 음식을 먹으니 마치 한국에 거의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LA에서 마지막 여행지인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 있는 아내도 일본으로 오기로 했다. 재회의 설렘이 온몸을 감쌌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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