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서 만난 송종국(34)은 ‘CEO 송종국’이 새겨진 명함을 내밀었다. TV 예능프로그램 출연, 축구해설에 이젠 사업까지. 축구밖에 모르던 얌전한 ‘히딩크호 황태자’에서 은퇴 1년 만에 일등아빠·방송인·축구인·사업가로 파란만장하게 변신한 그가 궁금해졌다. 그 사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은퇴 1년, 한 점 후회없다=“여기 야외 풋살구장 옆에 실내구장을 만들 거예요. 잔디도, 기구도 가장 좋은 걸 사용하죠. 우리 아이들이 쓸 거니까요.” 공사가 한창인 축구교실 현장. 뙤약볕 아래서 흙먼지를 뒤집어 쓰면서도 마냥 설레는 표정이다.
5월이면 이곳에 유소년 축구교실 ‘송종국FC’를 연다. 지난해 봄 갑작스럽게 은퇴한 지 꼭 1년. 충분히 뛸 수 있는, 너무나 멀쩡한 상태에서 은퇴를 선언해 충격을 줬던 그다. 많은 축구인과 팬들은 지금도 선수 복귀를 조심스럽게 권유한다. 현역선수 못지 않게 뛸 수 있는 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다시 뛰어보는 게 어떠냐고들 하세요. 사실 다쳐서 큰 수술을 하면 1년 정도 쉬었다 복귀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후회나 미련이 없어요. 배에 살찌는 것 빼고는요, 하핫.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거든요.”
▶‘인생 뭐 있어?’로 시작한 방송 출연=송종국은 요즘 MBC ‘아빠! 어디가?’로 인기폭발이다. 금쪽같은 딸 지아에 무한 애정을 쏟으며 자타공인 ‘국민 딸바보’로 등극했다. 여느 연예인 부럽지 않은 활발한 방송활동, 사실 은퇴할 때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맥을 탁 놓듯 그렇게 축구를 놓았던 그다. 세상과 단절한 채 집안에만 있던 어느날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출연제의가 왔다. 낯가림 심한 그에게 춤이라니! 당연히 안하는 거였다.
그런데 한 달 뒤 불현 듯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인생 뭐 있어? 해보고 안 되면 말지 뭐.’ 3개월간 온힘을 쏟았다. 반응이 좋았다. 송종국의 재발견이었다. K리그 해설에 다른 방송 출연요청이 잇따랐다. 최근 1년 간 만난 사람들이 지난 35년 간 만난 사람들보다 훨씬 많고 다양했다. 꿈도 꾸지 않았던 일들이 꿈처럼 펼쳐지고 있다.
“지아랑 출연하는 방송은 그 자리에서 OK 했어요. 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지아와 있는 시간이 없었잖아요. 주위 반응이요? 아유, 폭발적이죠. 김남일 선수가 가장 부러워해요. 아마 은퇴하면 출연할지도 몰라요, 하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사실 스타 플레이어의 은퇴 후 수순은 해외연수나 지도자다. 그런데 유소년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니 10명이면 10명 모두 반대했다. 그 힘든 걸 왜 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본기와 인성을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와이프요? 당연히 반대했죠. 그런데 지금 이 부지도 와이프가 숨어있는 땅을 잘 발견해서 산 거예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송종국을 바라보는 축구인들의 시선은 뜨겁다. 스타 선수가 은퇴 후 자신이 직접 투자해 축구교실을 여는 건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거죠. 그래서 주위에 성공한 클럽들을 찾아다니며 귀찮을 만큼 꼬치꼬치 물어봐요. 성공한 데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후배들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사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한 축구팬의 질문을 대신 던졌다. ‘송종국은 2002년이 행복했을까, 아니면 지금이 행복할까. 지금 송종국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편안한 얼굴이다.’ 그는 가만 생각하더니 TV에서 보던 ‘아빠미소’로 답한다. “그때도 참 좋았죠. 그런데 지금은 인생 후반전이잖아요. 전반전이랑 색깔은 다른데요, 정말, 정~말 행복해요.”
용인=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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