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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리는가, 봄풀처럼 연한 그들의 울분…
극한의 감정 끝에 터지는
소녀의 알수없는 기묘한 소리

역사에 소외되고
세상의 광기에 희생된
그대, 광주에 바친다




극도의 억울함과 분노, 슬픔 앞에서 인간은 말을 잊는다. 끝에 다다른 감정을 표현할 말, 의미를 담아 소통해야 할 말의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때 터져나오는 것은 다만 생명 있는 것들이 내지르는 알 수 없는 기묘한 소리와 울음뿐이다.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는 그런 억눌린 소리와 울음으로 가득하다. 소설 한 권, 한 쪽마다 쟁여진 울음들이 삐져나와 마침내 홍수를 이룬다. 복받치는 울분 때문에 울고, 가슴 아파서, 슬퍼서 울고 아파서 운다. 혹 웃는 때가 있지만 이는 울음을 가장한 것일 뿐이다. 오직 가느다란 정신의 끈을 지탱해주는 건 오래 전부터 불려온 노랫가락이다. 노래는 몸부림처럼 저절로 아픈 이들의 몸에서 흘러나온다.

공선옥은 오랫동안 광주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살고 있기도 한 그곳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가 그려내는 광주는 거대한 사건으로 조명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가난하고 소외된 약하고 순한 개인들의 삶을 바랜 앨범 펼치듯 조심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거기엔 독하고 약지 못해 세상과 짝하며 살지 못하는 봄풀처럼 연한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 헤죽거리거나 조용히 울고 있다. 

소녀적 발랄하고 예뻤던 정애의 엄마는 언제부턴가 말을 잃고 자신을 표현하는 게 그저 울거나 웃는 게 전부다. 삶의 바닥에 내몰리면서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 정애 아빠는 ‘융구 쇼바 슝가 아리따 슈바 슈하가리 차리차리 파파’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한다. 정애는 객지로 나간 아빠를 대신해 식구들을 어떡하든 먹여 살리려 애쓰지만 마을 사람들은 돼지와 닭, 개를 약탈해가고 어린 순애와 정애에게 몹쓸 짓을 하며 서로 눈감아 준다. 어린 순애와 정애 아빠, 정애 엄마와 뱃속의 아기가 차례로 세상을 뜨자 정애는 마을사람들이 건넨 돈 몇 푼을 쥐고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도시로 나간다. 정애는 친구 묘자에 의해 시장에서 정신 나간 여자로 발견된다. 시장 사람들은 ‘그날’이후 정애가 그렇게 됐다고 했다. 묘자는 엄마가 새 살림을 차린 도시의 복래식당을 찾아간다. 거기서 혼이 나간 박용재를 만나 자신을 허락한다. 공돌이 신세에 학생으로 오인받아 군인들에게 터지고 삼청교육대를 다녀온 뒤 그는 이미 반은 저세상에 가 있는 좀비나 다름없다. 묘자에게 멀쩡하게 시를 읊어주다가도 ‘쭈요쭈요쭈요, 쿡쿡쿡’ 알 수 없는 소리를 낸다. 비상계엄이 뭔지, 전두환이 누군지, 구속인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못하면서 학생들처럼 흉내 낸 박용재의 무용담을 들으며 묘자는 “그가 별 것도 아닌 일로 감옥을 가고 삼청교육대라는 데를 갔다 온 것만 같아.” 싱겁고 어이없어 웃는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으나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던 나의 어머니는 콩밭을 매다가 누군가와 하염없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마치 옆에 가람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웃기까지 하면서 조단조단 이야기를 하다가 한숨도 쉬다가 그러는 것이었다.”‘(작가의 말’ 중)

‘미친 세상’은 언제 그랬냐 싶게 불과 몇 개월 만에 멀쩡하게 돌아간다. 그런 일이 있기나 있었던 건지, 사람들이 죽기는 죽었던 건지 숙자의 의붓딸 당금이에게는 아지랑이 같다.

숙자는 “안 존 것은 언능언능 잊어불어야제. 좋도 안헌 것 붙들고 있어봐야 밥이 나오겄냐, 뭣이 나오것냐”며 딸을 다독인다.

공선옥은 쓰러진 자를 더욱 세게 밟는 사람들, 미친 세상의 구호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미친 세상 속에서 미쳐간 사람들, 그 속에서 버팅기는 사람들, 떠도는 사람들을 그려내며 묻는다. 노래도 말도 되지 못한 소리들이 어디서 오는가고.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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