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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동양 정신의 산물 ‘우연’ 으로 녹여내다
칠순 넘긴 추상세계의 두 거장 윤명로 · 존 배 개인전
원로 추상화가 윤명로‘정신의 흔적’展
‘벽A’ ‘회화 M.10’ 등 50년 화업 결산
“자연의 본질 담기 위해 화폭과 씨름”

재미조각가 존 배‘기억의 은신처’展
철사 일일이 용접 기하학적 곡선미
“바흐처럼 약간의 변화로 새롭게 작업”




한국의 현대 추상화 운동을 주도했던 원로 화가 윤명로(77)와 미국에서 활동 중인 원로 조각가 존 배(76)의 개인전이 나란히 개막됐다. 칠순을 훌쩍 넘긴 두 거장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긴 하나 동양의 정신성을 서양의 조형어법에 대입시켜 ‘초월적 추상’을 올곧게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모처럼 만나는 명징한 추상의 세계를 살펴본다.

▶50년간 지향했던 게 결국 ‘자연’이었거늘= ‘윤명로:정신의 흔적’이라는 타이틀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50년 화업을 결산하는 전시를 갖는 윤명로 화백은 모색과 실험을 통해 독자적 창작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추상화단의 대표 작가. 그의 그림은 붓을 휙휙 휘두른 듯하지만 끝없는 성찰을 거친 ‘정신의 산물’인 것이 특징이다.

이번 회고전에는 195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10년을 주기로 큰 변화를 보였던 시대별 대표작과 지난해 제작한 대형 신작 등 60여점이 내걸렸다.

윤명로는 추상이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1960년대, 꽉 막힌 기성화단의 권위에 도전하며 덕수궁 담에서 획기적인 전시를 주도했다. 또 사르트르의 소설 ‘벽’을 모티프로 한 1959년 작 ‘벽A’, 1963년 작 ‘회화 M.10’ 등은 암울했던 시대를 어두운 색채와 두꺼운 질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어 1970년대 대표작 ‘균열’ ‘자’ 연작은 물감의 균열현상을 극대화시켜 갈라지고 녹아내린 자(Ruler)를 통해 독재자(Ruler)에 짓눌린 민중의 상황을 풍자한 그림이다. 1980년대 ‘얼레짓’, 1990년대 ‘익명의 땅’ 연작 또한 시대별 화두를 적극적으로 탐색한 작업이며, 2000년대 ‘겸재 예찬’ 연작은 자연에 깃든 에너지를 기운생동의 어법으로 풀어낸 격조 높은 추상이다.

작가는 “지난 50년간 전위미술도 해봤고, 덕수궁 담벼락에 작품도 걸어봤으며, 앵포르멜도 해봤다. 하지만 내가 지향했던 것은 결국 ‘자연’이었다”며 “자연을 추상으로 표현한 것은 예술의 본질(essence)은 ‘추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 최초의 한 획을 던지면 그 공간이 요동치고, 그 요동의 순간과 함께 호흡하다 보면 만족스런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6월 23일까지. (02)2188-6000

 
가는 철사를 용접해 둥근 구조물을 만든 존배의 ‘유한한 공간에서 길을 잃다’(2011).
                                                                                                                                    [사진=갤러리현대]

▶조각으로 음악을 빚다=‘기억의 은신처’라는 타이틀로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존 배는 한국 모더니즘 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 철사를 손으로 일일이 용접해 정사각형이나 반원을 만든 뒤 이를 덧붙여 커다란 구조를 만드는 존 배의 조각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기하학적이면서도 곡선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7년 만에 갖는 고국에서의 전시에 존 배는 2008년 작부터 최근 작까지 20여점을 출품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작품들은 안정된 틀에 살짝 변화를 가해 그 묘미가 각별하다.

작가는 열두 살이던 194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부모는 구호 활동을 하기 위해 아들을 미국에 남겨두고 귀국했다. 홀로 남겨진 존 배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 4년 장학금을 받고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 진학했다. 27세에는 프랫인스티튜트 조각과 최연소 학과장에 올라 30년간 프랫의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고령임에도 여전히 재료 선택에서부터 용접과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혼자 진행한다.

 
 윤명로 화백의 추상화 ‘익명의 땅’. 네개의 캔버스를 연결시킨 대작이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내 작업은 재즈와 유사한 점이 많다. 매 순간 우연한 결정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에 직접 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겉은 달라도 내면엔 무언가 ‘하나’씩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과학에서는 원자가 있고, 음악도 하나의 음에서 시작한다. 나 역시 항상 ‘하나’라는 개념을 갖고 작업했다”고 했다.

피아노를 배운 어머니 덕분에 존 배와 그의 누나, 형 모두 악기를 연주했는데 이런 성장 배경은 그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흐를 좋아한다. 바흐는 단순한 선율에 약간의 변화만 줌으로써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나 역시 작업이 잘 안 풀릴 땐 바흐로 돌아가면 길이 나오더라”고 밝혔다. 4월 25일까지. (02)2287-350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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