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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생을 해야 신명나는 체질인 최동열,히말라야에 빠지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지구촌을 방랑자처럼 누비는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 최동열(62)이 성스러운 산 히말라야에 푹 빠졌다. 최동열은 눈 덮힌 히말라야 봉우리에 누드를 그려넣은 독특한 풍경화를 모아 3일부터 서울 인사동 선화랑(대표 원혜경)에서 개인전을 연다.

‘신들의 거주지- 안나푸르나, 칸찬중가’라는 제목으로 갖는 이번 작품전에는 2011년 봄 네팔 히말라야 중부의 안나푸르나 산맥을 돌아다니다 베이스캠프인 촘롱마을에서 그린 작품과, 같은 해 가을 칸첸중가의 종그리에서 그린 회화가 나온다. 또 지난해 봄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며 갸루마을과 마낭마을 위 프라켄 곰파에서 그린 유화도 내걸린다.

그는 대다수 작가들이 히말라야의 사진을 찍어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눈바람을 맞아가며 그림을 그렸다. 물론 150~200호 대작들은 히말라야에서 돌아와 한국과 미국의 작업실에서 작업했지만 히말라야 설산을 마주보고 작업한 것들이 적지않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작가가 히말라야에서 느낀 감흥이 생생히 배어 있다.


최동열은 “작년 봄 프라켄 곰파(해발 3945m)에서 아침을 맞으며 이제 남은 생(生)은 안나푸르나, 강가푸르나 같은 히말라야의 얼굴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는 “남들이 다 그리는 방식의 산 묘사는 흥미가 없다”며 드넓게 펼쳐진 설산에 인간을 상징하는 여성누드와 꽃 같은 정물을 곁들여 이색적인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특이한 구도의 산그림은 그의 남다른 인생경험에서 비롯됐다.

그의 할아버지는 구한말 일본 관서대 법대를 나와 민족대표 33인을 변호한 우리나라 초대 변호사였다. 할머니는 소설가 나도향의 누나로,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장손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란 그는 경기중을 거쳐 15세에 검정고시를 거쳐 외국어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다. 이후 해병대에 지원해 17세 때 베트남전쟁에서 2년여간 포로심문 등 첩보활동을 했다. 이 시절 전쟁의 어두운 뒷면을 접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노동자, 바텐더, 태권도 사범을 전전했다. 그리곤 뒤늦게 미술에 빠져들어 플로리다 멕시코 뉴올리언스 뉴욕을 떠돌면서 그만의 독특하고도 자유로운 조형세계를 창출해냈다.

작가는 “나는 고생을 하면 할수록 더 신이 나는 성격이다.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가 칸첸중가, 안나푸르나, 판딤을 정면으로 보고 있으면 오래 전 잃었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포근하다. 캔버스를 들고 산을 오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고산에서 작업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더없이 신명이 난다. 원초적인 사랑에 들떠 하얗게 분장한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강렬한 청년으로 돌아온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개인전과 함께 미학 에세이집 ‘아름다움은 왜’도 출간했다. 4월 16일까지. 02-734-0458.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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