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리보(영국 런던은행간 금리) 조작으로 오명을 얻은 런던 금융시장이 이번에는 금과 은 국제가격까지 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영국 금융감독당국이 런던시장 내 금과 은 가격 결정과정의 조작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리보(영국 런던은행간 금리) 조작파문에 이어 런던시장에서 금은 가격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스콧 오말리아 위원은 이날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선물산업협회(FIA) 연례총회 참석 중 기자들과 만나 CFTC가 금과 은 가격조작 의혹 조사에 나섰음을 시사했다. 그는 리보 스캔들을 계기로 “에너지와 선물 등 광범위한 부분의 지수들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현 조사상황은 아직 미숙한 차원”이라고 선을 그어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또 다른 CFTC 위원도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금융 투자자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바트 칠턴 위원도 “리보 금리 조작을 고려할 때 다른 지수들과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금융청(FSA)도 말을 아꼈다. 외신에 따르면 FSA 측은 금과 은 가격 조작 의혹에 대한 공식논평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관련 국제 협의체인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가 관장하는 가격 지수들에 대한 광범위한 재검토가 바람직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와 관련, IOSCO는 5월 주요 지수가 조작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을 담은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런던시장에서 금 가격은 바클레이즈, 도이체방크, HSBC, 소시에테제네랄, 노바스코샤뱅크 등 5개 은행이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전화회의를 열어 결정한다. 은 가격은 노바스코샤뱅크, 도이체방크, HSBC 등 3개 은행이 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금과 은 가격은 일반 귀금속 가격과 금·은과 연계된 파생상품 가격, 광산업체 매출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금과 은 가격 결정이 비공개로 이뤄지고 참여하는 은행이 리보의 10여개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작의 개연성이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WSJ는 금과 은 가격이 리보처럼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면 리보 스캔들에 못지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가격 조작 가능성을 일축했다.

런던금시장연합회는 WSJ 보도 직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금이나 은 가격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다”며 “리보와 달리 가격 결정 과정이 투명하다”고 밝혔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