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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일뿐…그곳에 공자는 없었다”
“유교는 공자가 창시한 게 아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란 책으로 잘 알려진 김경일 상명대 교수가 다시 도발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유교 기원과 동양사상 연구로 30년의 시간을 보낸 김 교수는 30년 연구의 완결판 격인 ‘유교 탄생의 비밀’에서 “유교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거대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온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그가 추적한 것은 상대(商代) 갑골문과 서주, 춘추, 전국시대의 청동기 명문, 전국시대와 진대의 죽간 등 고문자 자형이다. 오래된 날것 그대로의 1차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유교의 기원은 저자가 30년간 몰두해온 주제로, 유교가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어떤 이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됐는지를 찾는 일이다. 그러나 연구에 참고할 만한 중국 고금의 문헌과 한국, 일본 심지어 서양 연구자들의 논문까지 뒤져봤지만 관련서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갑골학 박사 출신답게 김 교수는 고문헌에서 방향을 바꿨다. 갑골문, 명문에 새겨진 고문자를 찾아 유교 가치의 원형을 발굴해갔다. 그가 찾아낸 유교의 뿌리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보이지 않는 절대신에 대한 두려움 등 원시종교에 닿는다. 원시사회 구성원은 자연 속에 내재된 신이 있다고 믿었다. 상나라 때 절대신 ‘제’가 만들어지고, 왕 조갑은 상제를 절대신의 영역에서 분리, 대신 조상에게 신격을 부여하는 조상숭배를 의식화한다. 유교의 핵심인 ‘인(仁)’은 주나라 이전뿐만 아니라 공자가 살았다고 알려진 춘추시대의 청동기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유교의 ‘유(儒)’ 역시 상대 갑골문은 물론, 주대 청동기, 전국시대 청동기와 죽간 어디에도 없다. 최초의 형태인 비 우(雨)와 큰 대(大)를 결합한 수(需)에 사람 인(人)이 결합된 글꼴은 한나라 때 나타났다는 게 저자의 발견이다. 저자의 결론은 공자는 없다는 것이다. “중화의 세계관, 특유의 영웅신화 작법”이라는 설명이다. 또 한 번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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