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내놓고, 전국적인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청소년들은 학교 현장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ㆍ고교생들은 보여주기 위한 대책보다는 실효성이 있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윤모 군은 “교내 폐쇄회로(CC)TV는 그야말로 있으나마나”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촬영되는지, 어디가 보이지 않는 곳인지 다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군은 “CCTV가 비추고 있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폭력이 없을 수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어떻게 적발하겠느냐”며 “CCTV 몇 대 설치했다고 학교폭력이 없어질 거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박모(백암고 2년) 양은 “실태조사라고 불리는 설문지 항목은 조잡하기 그지없는 생색내기용”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박 양은 “학생들의 상태와 심리를 구체적이고 정성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폭력이 있다 없다’식의 정량적 평가와 조사로는 절대 학교폭력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마음 놓고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없는 환경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1년 전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마포구 S 중학교 3학년 박모 군은 “부모님이 피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 사실을 알려도 학교 측이 가해자 편을 들거나 좋게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결국 자신만 피해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 군은 “신고를 하면 가해자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원칙을 보여줘야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입시와 경쟁이 지배하는 교육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청소년단체 ‘희망의 우리학교’의 최훈민(17) 군은 “현행 입시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경쟁에 따른 학생들의 계층 분화와 마찰이 학교폭력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최 군은 “‘일진경보제’ 등 모든 문제를 일진 탓으로만 돌리는 정부 대책으로는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