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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이윤창출을 위한 필요악?…박근혜 정부, 기업 비자금 비밀의 문 열어 젖히나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습니다.”(노태우 전 대통령ㆍ1995년 10월 27일 대국민사과),“국민 여러분과 주주님께 죄송합니다.”(조양호 대한항공 회장ㆍ1999년 11월ㆍ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혐의로 구속수감되면서), “감옥을 가더라도 제가 가야 마땅합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제 스스로 지겠습니다.”(이회창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ㆍ2003년 10월 30일ㆍ불법 대선자금 관련 대국민 사과), “도의적이든 법적이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이건희 삼성 회장ㆍ2008년 4월 11일 차명계좌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사과)….

20년 넘게 반복되고 있는 정치인과 기업인의 비자금 관련 사과 문구는 변하지 않았다. 처음엔 혐의를 전면 부인하다 사정기관이 계좌추적을 통해 물증을 들이대면 사과를 하는 패턴도 이어졌다. 이쯤되면‘클리세(Clicheㆍ진부한 상투어)’다.

최근까지도 유력 대기업 총수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실형을 받아 재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한국에선 기업하려면 비자금은 필수라는 등식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기업과 비자금의 질긴 악연은 1차적으론 시대적 산물이다. 1960~70년대 군사정권 아래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네고 사업상 편의를 얻으려던 기업들이 많았고, 당시엔 이를 묵인했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각각 5000억원씩 총 1조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한 돈줄도 기업이었다. 기업 입장에선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할 만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기 전까진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에 대한 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대기업과 계열사간 거래실적 부풀리기, 분식회계ㆍ차명계좌를 활용한 비자금은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복제를 거듭해 재벌 오너 일가의 축재와 편법 상속의 수단으로 변질돼 온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일각에선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추구이고 이 때문에 때로는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이익배당률을 조작하거나 기업의 신인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논리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이유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00년~2010년 10월까지 대기업 총수나 임원이 조성한 비자금 규모가 무려 20조4836억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복지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지하경제 범주에 속한 기업의 비자금 찾기에 강한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이미 국세청과 검찰은 사전정지 작업에 들어간 분위기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진행했거나, 하고 있는 기업만해도 KT&G, 롯데호텔, 코오롱글로벌, 동아제약, LG디스플레이, GS칼텍스 등이다. 해당 기업들은 정기세무조사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경제민주화가 화두인 시대인 만큼 추가 세원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많다.

검찰 쪽 움직임으로는 서미갤러리에 대한 수사에 관심이 쏠린다. 수년간 법인세 수십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국세청이 고발한 데 따라 검찰이 칼을 빼든 것이다. 서미갤러리는 앞서 일부 대그룹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전력으로 유명세를 치른 곳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서미갤러리가 재벌가와 거래를 많이 해온 걸로 알려진 만큼 이제까지 드러난 기업의 비자금 외에 또 다른 게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와 기업 간 숨겨져 있는 비자금 찾기 게임은 벌써 시작됐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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