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실재와 가상, 그 간극에 주목한 한성필의 파사드 프로젝트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대형 가림막을 드리운채 복원공사가 한창인 아름다운 궁전 아래로, 노오란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오가는 차도, 인적도 없이 정적만 감도는 새벽녁, 벨기에 브뤼셀 시청광장을 찍은 젊은 작가 한성필(41)의 사진이다. 오른쪽 시청 건물의 벽시계는 새벽 5시 42분을 가리키고 있다. 분침을 자세히 보면 40분에서 42분까지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작가가 건물 건너편에 삼각대를 세우고, 장노출로 새벽의 브뤼셀 도심을 찍었기 때문이다.

한성필은 멋진 가림막이 설치된 세계 곳곳을 답사해가며 현장 사진작업을 펼친다. ‘파사드 프로젝트’라는 연작에서 작가는 중후한 건축물 앞에 드리워진 정교한 가림막과, 실제 건물간의 미묘한 간극을 살며시 드러낸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예리한 앵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현과 현실, 모방과 실재의 상관성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한성필의 파사드 프로젝트는 국내외에서 주목받으며 작가의 이름을 또렷이 각인시켰다.

작가 한성필이 지난 2011년 서울 아라리오갤러리 삼청에서의 개인전 이래 2년 만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청담에서 개인전을 연다. 오는 4월 7일까지 계속될 전시에 작가는 새로 제작한 다양한 파사드 프로젝트와 재개발 프로젝트 등 보다 진일보한 작업들을 두루 선보인다.


한성필은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역사적 건물의 가림막에 주목해왔다. 그 건물의 본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진 가림막이라든가, 정교하게 건물을 촬영한 가림막, 또 멋진 벽화 등이 그려진 현장을 찾아 이를 렌즈에 담는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실재와 가상 사이의 간극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

지금껏 주로 유럽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건축물과 거리를 촬영해왔던 한성필은 요즘들어 국내 건축물로 그 시야를 넓혔다. 몇몇 중요 문화유적들은 직접 찾아가 공동 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로써 개념 설정에서부터 가림막 제작및 설치, 최종 마무리 작업까지 직접 디렉팅하게 됐다.

일례로 남한산성 복원작업에 주목한 한성필은 병자호란 당시 굴욕의 현장이었던 남한산성의 행궁 한남루의 복원 후 모습을 가림막으로 설치했다. 그리곤 이를 사진에 담았다. 그의 한남루 사진 속 가림막은 단청작업이 완성된 미래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가림막 너머에 있는 실제 공사 중인 한남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상의 이미지인 가림막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져간다. 관람객들은 프레임 속 이미지의 어느 것이 실제이고, 어느 것이 가상인지 혼돈하게 된다. 또 한성필의 경계는 지극히 리얼한 기록이지만 역설적으로 환영의 이미지로써 그 자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이번에 삶의 체취와 흔적을 담은 ‘재개발 프로젝트’도 선보이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을 위해 부숴지는 건물들의 과정을 담은 한성필의 사진들은 인간의 기억과 시간을 저장해 우리 앞에 드리운다. 한때 웃고 울며, 사랑하고 절규했던 ‘집’이라는 감성적 공간을 담은 사진들은, 어떤 이의 꿈과 추억이 깃든 장소가 이젠 차갑고 피폐화된 콘크리이트더미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찼던 집이 건물로, 그리곤 마침내 ‘낙석주의’라는 표지판이 붙을 정도로 위험한 돌 덩어리로 변한 과정을 작가는 독특한 사진들로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한성필은 기존의 풀 HDTV 보다 4배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울트라HD TV로 구현한 영상 미디어작업도 공개했다. 세계 최초로 최첨단의 84인치 4K UHD TV(LG전자)를 활용해 영상작업을 시행한 그의 작품 속에는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부산 감천동 감천마을의 이국적인 풍광이 마치 꿈결처럼 흐르며 펼쳐진다. 무료관람. 월요일 휴관.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청담]02)541-5701

yr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