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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푸른배이야기’, 현대화로 사라진 어촌마을이 30년 전 간직했던 추억들
사방이 막혀 어느 하나 왕래가 쉽지 않았던 작은 마을, 동서남북 바다로, 산으로, 논으로 막혀 증기선과 버스로 찾아가야 하는 조그만 어촌 마을에 30년 전 한 손님이 찾아왔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소박한 이곳 사람들. 통통배 선생님 김성식은 이들과 함께 3년을 살았다. 마을을 지나는 수로를 따라 낡은 푸른배를 타고다니며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같지 않게 살아가는 통통배 선생. 그가 관찰하며 기록했던 많은 것들이 그에게 아련히 남아있다. 연극 ‘푸른배이야기’는 마을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그들을 바라본 통통배 선생의 말을 통해, 가볍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10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각각의 인물과 저마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지만 때론 웃음도 준다. 처음 방문한 마을, 칠복이 할아버지에게 오래돼 모습도 이상하고 부실하기까지 한 낡은 쪽배를 강매당한 통통배 선생은 이후 그 배를 타고 마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사고로 배를 잃어 어부의 꿈을 접고 술주정으로 살아가는 만석이와 버림받아 거지처럼 아무데서나 먹고자는 말순이, 도박하는 황목련ㆍ최봉달 부부의 싸움, 고기잡는 아이들에게서 통통배 선생은 인생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19세 순수한 청년 광수오라방의 사랑, 배에서 혼자 살며 미친사람 취급 받지만 늘그막까지 18세 순정을 간직하고 있는 남호철 노인, 영화를 전혀 이해 못하는 초등학교 3학년 삼식이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에 거칠지만 누구보다 솔직하다.

하지만 너무나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그저 착하기만 해 자신이 거둬준 여인에게 이용당하는 춘식이를 보며 통통배 선생은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30년만에 다시 돌아온 마을. 개발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어느새 다른 곳이 됐다. 사람들은 죽고, 떠나고, 통통배 선생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너진 전봇대, 허물어진 집. 푸른배를 타고 다녔던 소래강도, 수로도 더러운 물로 가득찼고 예전 마을은 모두 폐허로 남았을 뿐이다.

작품은 정의신이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인천 남촌도림동을 그 배경으로 삼았지만 실제론 지명만 따온 상상속의 마을이다.


통통배 선생은 에피소드마다 스케치북을 넘겨받으며 매번 바뀐다. 단순한 조명과 무대, 무대 중앙의 마루는 집, 주점, 식당, 배, 영화관이 된다.

오래된 어촌 분위기를 만드는 정겨운 세트가 눈에 띄며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빨래 사이로 밧줄, 통발, 어구 등이 곳곳에 숨어있다. 녹슬은 슬레이트 지붕, 낡은 벽면, 나무 마루, 마루 아래 숨겨진 작은 소품들, 작고 쓸쓸한 마을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옴니버스식 구성에 많은 수의 이야기를 담은 나머지 띄엄띄엄 동떨어진 느낌, 짧은 이야기에 등장인물이 아까워 몇 개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뤘으면 했던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어촌마을 사람들의 거칠지만 소박한 이야기, 극단을 오르내리는 격한 감정은 없지만 미소와 진지함으로 내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정의신 작ㆍ연출, ‘푸른배이야기’는 24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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