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 돈을 못 벌면 자식들이 고생한다. 정도가 심하면 자식들은 아예 ‘각자도생’도 모색해야 한다. 이 정도가 되면 가장이 권위를 세우려 해봤자, 가족들은 제 역할을 못한 가장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민주통합당이 최근 말 안 듣는 ‘자식’ 격인 자치단체당 때문에 고민이 깊다. 대선 패배가 민주당 권위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 ‘화끈한 한방’ 없는 청문회와 여당에 끌려가는 정부 조직 개편안 처리, 그리고 미국에서 불어온 때아닌 ‘안철수 바람’은 이들을 제어할 지도부의 마지막 권위마저 날려버렸다.
‘맏아들’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일 대형 마트 판매 제한 권고 품목 51개를 발표했다. 콩나물ㆍ배추ㆍ고등어ㆍ갈치 등 찬거리부터 담배ㆍ술ㆍ쓰레기종량제봉투 등이다. 대형 마트는 즉각 반발했다. 영업시간 제한에 이은 품목 제한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맏아들’은 멈출 기세가 아니다. 박 시장에게 당장 현안은 내년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재선거다. 안철수 서울대 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뺀 ‘자기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은아들’ 송영길 인천시장은 인수위 시절,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도시 빈민과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해 얘기했더니 박 당선인도 공감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비영리 국제병원 설립 얘기를 했더니 박 당선인으로부터 “좋은 솔루션을 발견했다”는 칭찬도 들었고,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어 오늘 만남이 만족스럽다”고 소회도 밝혔다. 과연 송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발언 수위다.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에서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당으로부터 ‘망언’이라고 힐난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월 초 호남의 문재인 ‘몰표’에 대해 “무겁지 못했고, 충동적인 선택”이라고 말해 호남 민심에 비수를 꽂았다. 당시엔 ‘호남 총리설’이 파다했었다. ‘대통합’을 위해 당시 박 당선인이 호남 출신 인사를 총리로 기용할 것이란 게 호남 총리설이었고, 박 지사는 그 후보로 거론됐었다. 결국 박 지사의 ‘도발’은 정홍원 총리가 임명되면서 불발로 끝났지만 지방선거까지 남은 1년여의 시간에 각 지역의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각자도생’은 민주당의 기반을 흔들 만한 불안 요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