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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제천 금수산 정방사--월악능선ㆍ청풍호를 발 아래 드리우고
[헤럴드경제=제천]절이 마치 제비집 같다. 산 높은 곳 절벽 바위에 살짝 걸터앉은 모습이 추녀 끝에 매달린 제비집을 연상케 한다. 이채롭다.

이 산 꼭대기 사찰에서 발 아래의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가히 절경이다. 제천 금수산 정방사(淨芳寺)다. 필자가 전국을 다니면서 느끼는 절의 입지는 크게 두가지다. 참선하듯 조용한 산 속에 살포시 감싸인 절, 그리고 큰 꿈을 펼쳐 세상을 끌어안 듯 높은 곳에서 확 뚫린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절이다.

정방사. 잘 생긴 꼬마가 엄마 손잡고 사찰나들이 왔다.

천년고찰 정방사는 절벽에 매달린 작은 절에서 청풍호와 월악의 능선을 바라보는 수려한 경치로 유명하다. 찾아가는 길 또한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청풍문화재단지 쪽에서 보면 청풍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꾸불꾸불 오르막길로 오르는데 왼쪽은 산비탈,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 아래 청풍호와 남한강이 길게 펼쳐져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이 길로 운전해 약 10분 가까이 가면 ES리조트와 능강계곡이 나오는데 계곡의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 산길로 들어간다. 이 입구는 약 100여m 가량 비포장도로이지만 이 구간만 지나면 콘크리트 길이 절까지 이어진다. 절 가까이 갈수록 길은 경사가 가팔라 진다. 필자는 절 바로 코앞까지 아슬아슬한 길을 차로 갔지만 좁은 절벽길에서 차를 돌려야 하므로 조금 아래쪽의 주차장에 세우는게 더 편리할 수 있겠다.

정방사로 가는 길. 왼쪽부터 청풍대교에서 정방사로 가는 길.능강계곡에서 정방사로 오르는 길(제2 자드락길),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위 사잇길.

숲 속의 좁은 임도길로 이어지는 정방사 오르는 길은 차를 세우고 운동삼아 걸어서 가도 좋다. 이 길은 제천시에서 걷기 길인 ‘자드락길 제2코스’로도 애용되고 있는데 숲 속 산책길로도 으뜸이다. 걷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 아래 좁은 터에 절집이 길게 줄서듯 들어서 있다. 경사지여서 좁다보니 들어가는 입구부터 바위 사잇길로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좁은 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절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암반 절벽 아래 걸터앉은 정방사의 모습들. 이 모습을 두고 추녀 끝에 매달린 제비집 같다고도 한다.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는 곳은 해우소.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우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정방사의 ‘명물’이다. 딱 시골집 재래식 화장실이다. 쪼그리고 앉아야 하고 심한 냄새를 감내해야 하는데 ‘가장 아름답다’니…

정방사 해우소는 이러한 ‘고통’과 함께 시름을 잊게 해줄 멋진 경치를 동시에 ‘서비스’로 제공해 준다. 청풍호가 보이도록 한쪽 벽을 없앴다. 호수 경치야 밖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곳 산꼭대기에서 ‘급한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아름다운 경치가 ‘험한 화장실’을 잠시 잊게 해준다.

경내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해우소. 오른쪽은 해우소 뒷쪽 모습으로 청풍호가 보이도록 벽을 뚫어놨는데 이 때문에 이 절의 명물이 됐다.

그런데 이 화장실이 요즘 ‘일’났다. 제천시의 자드락길이 이곳에 생기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이 화장실을 이용하게 됐는데 이 재래식 화장실에 과부하가 걸린 것. 이 절 주지 스님은 시에 화장실 문제 해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특혜시비 때문에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결정을 못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와 만난 주지 상인(常仁) 스님은 조만간 시와 ‘정면대결’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필자에게 이와 관련해 ‘강한 필(筆)’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임을 내비쳤다.

새로운 화장실이 생기면 이 ‘명물 화장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스님은 없앤다고 하셨다. “관광명소인데 남겨두는게 좋지않겠습니까” 했더니 고개를 저으시며 다른 생각이 있다고 하셨다.

절에 오르자 마자 한 눈에 펼쳐지는 청풍호는 정말 가슴을 활짝 열어주는 풍광이었다. 암반 절벽 아래로 길게 절집이 배치돼 있는 마당을 따라 청풍호와 각종 산봉우리들이 그림 처럼 전개됐는데 이 경치를 찾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정방사의 풍경과 소나무 그리고 저 아래 청풍호와 그 너머 월악의 능선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경치좋은 곳에 가면 필자는 자동적으로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습관이 여기서도 ‘발휘’됐다. 눈을 렌즈에 들이대고 초점을 잡으려 한 곳을 ‘조준’하고 있는데 갑자기 잘 생긴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렌즈 속으로 들어왔다.

짧은 찰라에 셔터를 눌렀는데 얼굴이 나오는 바람에 미안해서 젊은 새댁에게 정중히 얘기했더니 꼬마와 함께 ‘모델’로 서줬다. 너무나 감사했다. 친정부모 등 가족과 함께 서울서 여행온 마음씨 고운 분이어서 필자도 그 부친께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부친도 친절했고 적극적으로 대해 주셨다.

정방사의 이모저모. ‘유구필응’이란 현판이 눈에 띈다. 황금빛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도난당하고 지금은 없다.

이날 이 좁은 절에 사람들이 무척 붐볐다. 사진을 찍고 다니는데 한 스님께서 눈이 마주치자 필자에게 “전에 우리 봤던가요“라며 물으셨다. 처음이라고 대답하고 돌아섰는데 나중에 점심공양을 하면서 그 스님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바로 주지 상인 스님이셨다. 점심 후 차 한잔 하러 오라고 하신 후 먼저 자리를 뜬 스님을 잠시 후 뵙기로 하고 식사를 하는데 이 방의 낮은 창에서도 청풍호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줬다. 절 어디를 가나 청풍호가 벗이 돼 준다.

뒤뜰에는 쏟아질 듯한 거대한 암벽 사이 우물이 있다. 이런 곳에서 마르지않는 샘물이 나온다는게 참 경이롭다. 물맛도 시원하고 좋았다. 이 샘이 있는 암벽 천정 높은 곳에는 벌집도 보였지만 다행히 벌은 잠자는지 외출 중이었는지 마주치지 않았다.

지붕과 암벽 사이. 암벽 밑의 우물, 식당 창으로 보이는 청풍호, 지장전, 스님이 거처하시는 사면이 유리로 된 방(왼쪽부터 시계방향)

정방사 지장보살에는 돌아가신 영혼들이 극락왕생하길 기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점심 공양을 마친 필자는 상인 스님 방으로 찾아갔다. 스님께서 낮에 거처하시는 방은 참 특이하다. 작은 사각형의 단독 건물인데 사면에 유리로 벽을 만들어 안팎에서 다 보이는 구조다. 방 안에 앉으면 마치 나의 모든 것을 밖에 내보이는 듯 노출된 느낌이다. 아니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을 안으로 갖고 들어온 느낌이다. 스님 자리에선 청풍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자랑하는데 마치 신선이 높은 좌대에 올라앉아 아래쪽 경치를 감상하는 듯 하다. 원래 좁고 막힌 구조를 상인 스님이 오시면서 개조했다고 한다.

상인 스님은 정방사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셨다. 필자에게 제천시장에게 시가 종교편향이 심하다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제천10경’에 타종교 성지가 들어가 있는데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덕주사와 정방사 등 사찰은 빠져있다는 것. ‘이게 종교편향이 아니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19살에 입산해 45년을 전국의 사찰에서 지내온 스님은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 보다도 제천 정방사가 더 아름답다고 자랑하신다. 월악산 능선이 파도치듯 아름다우며 꽃잎이 겹겹이 쌓여있는 그 가운데 호수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라고 표현하신다.

주지 상인 스님. 방 안에서 청풍호가 내려다 보인다.

상인 스님은 정방사와 제천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로 21세기 문화 코드인 힐링, 명상치유라고 하셨다. 이에 대해 많은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특히 정방사의 깊은 산 속 빼어난 자연환경을 활용해 명상치유센터를 만들어 전국민들에게 이용케 하고 싶다고 했다. 절 아래 주차장 건너 산에 명상치유센터를 구상하고 있는데 시에서 그게 쉽지않아 아쉬워하셨다. 50~100명 수용할 강당과 숙소 샤워시설 등이 세워지면 아주 좋겠다고 하셨다. 스님은 지금까지 사찰의 성찰문화가 템플스테이에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명상치유가 그 뒤를 이을 아이템이라고 강조하셨다.

또한 정방사를 명승유적지로 지정해 달라고 문화재청장에게 건의하기도 했고 시청에도 건의했지만 진척이 없어 안타깝다고도 하셨다.

불행하게도 귀중한 문화재인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예전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주지스님이 교체되는 일도 있었는데 아직까지 이 문화재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잡음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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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방사 창건 설화 : 주지 상인 스님이 전해주신 정방사 창건 설화가 재밌다.

신라 문무왕 2년(662년) 의상대사께서 원주에서 공부하고 계실 때 그의 제자이신 정원스님이 십수년간 전국을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가 어디엔가 가람을 지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의상대사를 찾아가 의뢰했더니 의상대사는 이 주장자(拄杖子ㆍ스님들이 들고 다니는 지팡이 처럼 생긴 물건)가 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세우라고 하셨는데 그 주장자가 바로 이 곳 원통전 앞에 딱 멈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산아래 마을 윤석사라는 사람을 찾아가면 가람을 지을 비용을 대줄 테니 가서 얘기하라고 일러줬다. 그 전날밤 큰스님(의상대사)이 미리 이 윤씨를 찾아가 ‘내일 한 스님이 와서 요청하면 꼭 청을 들어주라’고 당부하고 돌아갔다.

그래서 정방사를 지었는데 그때 윤씨에게 한 말씀 ‘유구필응(有求必應ㆍ스님이 요청을 하면 반드시 응해주라)’이라는 현판을 절에 걸어두고 있다.

스님은 정방사란 이름이 정원대사의 ‘정’자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방’자에서 따왔지만 이젠 그 의미를 정(淨)자는 ‘씻어버리고’, 방(芳)은 ‘부처님의 진리’를 말해서 여기에 오르는 모든 사람들이 ‘세속의 무거운 짐을 부처님의 진리로 깨끗이 씻고 가라’고 재해석하고 있다고 하셨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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