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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가 만든 미로, 티베트
티베트인들은 매사에 만족
승려들은 영적인 존재
티베트의 환상에 갇힌 결과

전쟁·패권주의·국민 인권문제
실재적 공간으로서의 인식 절실





티베트의 샹그릴라는 흔히 ‘잃어버린 낙원’, ‘부처가 다스리는 행복한 땅’으로 얘기된다. 티베트와 티베트불교를 신성화한 역사는 짧지 않다. 수세기 전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자들과 천주교 선교사들은 몽골 황실에서 티베트 승려들을 처음 만난 이래, 산속에 묻힌 신비로운 나라와 마력을 지닌 종교로 인식했다. 가까이는 영화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을 비롯해 ‘심슨가족’,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등에 닿는다. 이들을 통해 티베트와 샹그릴라는 영적인, 특별한 곳이란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해왔다.

도널드 S 로페즈 미시간대 석좌교수는 ‘티베트학의 현대적 고전’으로 불리는 ‘샹그릴라의 포로들’을 통해 이 모든 것은 티베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일갈한다. 저자는 티베트에 대한 신화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으며, 또 어떻게 해서 문제시되지 않고 계속 퍼져나갈 수 있었는지를 7가지 키워드(이름ㆍ책ㆍ눈ㆍ진언ㆍ미술ㆍ학문ㆍ감옥 등)를 통해 티베트의 문화와 사회의 실체를 보여준다.

로페즈 교수는 티베트의 신성화에는 이분법적 논리가 작용한다고 본다. 물질세계로부터 분리된 텅 빈 공간으로 보려는 경향, 고대아리안 문명의 비밀스러운 지혜와 근대 이전의 온갖 훌륭한 것을 보존해놓은 장소로 보려는 경향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티베트 사회가 지닌 복잡성과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단순화시켰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티베트를 수사하는 말들도 “티베트는 고립됐고, 티베트인들은 매사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며, 승려들은 영적인 존재”로 정형화된다.

티베트를 세상에 알린 가장 중요한 책을 꼽자면 ‘티베트 사자의 서’이다. 저자는 이 책이 대중적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데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심령주의가 유행하고 사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이 책은 카를 융이 자신의 심리학 이론과 결합시키면서 고전의 지위를 얻는다. 티베트의 지혜를 과학 맹신주의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한 섣부른 해석을 경계한다. 8세기께 쓰인 이 문헌은 당대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티베트에서 쓰이는 물건 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마니차는 티베트불교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옴 마니 파드메 훔’이 적힌 기도 바퀴를 놓고 한쪽에선 교리 체계나 형식도 불분명한 ‘미개한’ 종교로 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신비화’한다. 논란의 핵심은 이 진언을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연꽃 속의 보석’으로 볼 것인가에 맞춰졌지만 이 또한 제대로 본 게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로페즈 교수는 불교문화권에서 진언을 읊는 것은 불교 수행과 교화의 한 방편임에도, 티베트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티베트에 대한 환상에 갇힌 결과라고 말한다.

 
“1959년에 시작된 티베트 디아스포라 이래로 티베트불교문화는 샹그릴라의 또 다른 유물처럼 그려졌다. 샹그릴라는 히말라야의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채 시간과 역사의 바깥에서 고대문명이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으로 상상되었다.”(본문 중)

티베트 신성화의 정점에 선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도 로페즈 교수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티베트 역사를 볼 때 몽골에 항복한 티베트의 전략은 ‘보호자와 사제’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오늘날 티베트인이 서구권과 맺고 있는 관계도 이것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반면 중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이 티베트의 대사제를 선정할 권한을 가로챘기 때문으로 본다.

로페즈 교수가 티베트에 대한 입체적인 조명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려는 것은 티베트의 역사성이다. 티베트인이 사는, 실재하는 공간으로서의 티베트다. 그는 티베트의 역사도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패권주의, 정교 일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인정할 때 티베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티베트 독립’이라는 대의는 국민의 영적 성취에 달린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즉 민족자결권이 문화적ㆍ종교적 자유권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티베트불교와 한국불교의 역사를 인도불교 경전의 보고와 중국 경전의 보고로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티베트불교가 학문으로서 자리 잡은 것은 1959년 중국이 티베트 정부를 해산하고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인접국가로 망명하면서다. 미국은 이들을 받아들여 티베트 학문을 발전시키면서 티베트를 다시 보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로페즈 교수의 책은 여전히 환상의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나침반 구실을 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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