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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보다 더 지난한 현실의 삶
‘소설 같은 현실’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전제로 한다. 소설 같은 현실이 일상화되고, 그런 현실이 소설이 되는 세상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할까.

주원규의 소설은 그런 세계에 있다. 해고와 저임금, 소외된 청소년, 아르바이트 인생 등 우리 사회 밑바닥을 주시해온 작가는 소설 ‘너머의 세상’에서도 그런 현실을 똑똑히 응시한다.

쪽방촌에서 치매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지수는 강남 타워팰리스에서 간호보조무사로 일한다. 근육무력증으로 24시간 침대에 누워 사는 여성을 정성껏 간호하지만 정작 제 식구는 못 챙긴다. 아들 우빈은 강남 8학군 아이들 틈에서 내신 성적이 좋은 편이지만 문제아로 찍힌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린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지호가 그들을 배신하자 석구는 우빈 등을 데리고 지호의 집에 침입해 지호의 사촌누나를 겁탈하려 한다. 우빈은 석구를 말리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다가 석구가 지니고 있던 칼에 석구가 찔리는, 우발적 사고가 발생한다.

대학생 세영은 아버지 현수의 빚 때문에 대형 마트에서 불안한 신분으로 일하며 휴학 중이다. 일자리 생살여탈권을 쥔 김 팀장은 세영을 흠모해 연애를 강요하면서 생선정리창고에 가둔다. 생선비린내와 썩은 내, 차갑고 캄캄한 생선창고는 이들 가족이 겪고 있는 현실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막다름까지 떠밀린 이들 가족에게 과연 구원은 있는가.

작가는 세상의 구원은 기대하지 않는 듯하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신의 손’, 연극적으로 말하자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뒤틀리고 엉클어지고 안타까운 현실을 고대그리스 연극 끝에 신이 내려와 해결해주는 식이다. 이번 소설에선 강남 한복판에 진도 9.0의 지진이 발생해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가족들은 서로를 부르며 치매아버지 생일에 만나기로 한 잠실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가족은 때로 고통이지만, 사랑과 희망인 까닭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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