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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아이, 옥스퍼드 · 케임브리지大 보내느니 여행을…
종교분쟁이 가라앉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18세기, 영국 상류층 사이에선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어린 청년을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대륙으로 2, 3년간 장기 여행을 보내 해외 문화를 체험하고 외국어와 세련된 매너, 외교술, 고급 취향을 배워오도록 한 것이다.

그랜드 투어의 배경에는 공교육 불신의 영향이 컸다. 당시 명문가 부모들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보내느니 차라리 여행을 보내는 게 낫다고 여겼다.

연세대 설혜심 교수가 쓴 대중교양서 ‘그랜드 투어’(웅진지식하우스)는 그랜드 투어의 다양한 기록들을 꼼꼼하게 살펴 그랜드 투어가 유럽의 근대문화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보여준다. 유럽의 동질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영국인들이 사 모은 그림과 예술품이 유럽의 예술과 건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대륙의 매너가 어떻게 영국의 ‘젠틀맨’을 만들어냈는지, 당대 지성인들의 교류가 어떻게 계몽사상을 만들고 전파했는지 서양 근대의 탄생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랜드 투어의 여정에는 당시 수많은 지성들이 동행교사로 따라나섰다. 루소는 전 유럽을 휩쓴 연애 스캔들에 엮이고 존 로크는 옷값으로 여행 경비를 탕진하는가 하면 무명학자였던 애덤 스미스는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국부론’을 썼다.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이탈리아 기행’을,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를 처음 방문한 후에 ‘로마제국 쇠망사’를 쓰기 시작했다.

꼭 가봐야 할 명소,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토마스 뉴전트의 ‘그랜드 투어’ 등은 오늘날 여행지침서의 원조격이다.

그랜드투어의 주요 목적의 하나는 인맥을 쌓는 일이었다. 소개장을 받아 그 나라 왕족과 최고 귀족, 유명인들을 방문하곤 했다. 그중 인기 1순위 유명인사는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였다. 계몽사상은 이렇게 전 유럽으로 전파됐다. 18세기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오페라와 그림 수집, 그림 복제, 복식 등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은 한마디로 ‘문화바이러스’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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