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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건우가 그린 유디트… ‘아, 적장인줄 알았는데 내 팔이…’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이제는 폐허가 된 수영장에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소녀는 고통스러운듯 팔을 움켜쥐고 절규 중이다. 여기저기 잡풀과 쓰레기가 나뒹굴고, 푸른 페인트칠이 볼썽사납게 벗겨진 걸 보니 수영장은 방치된지 오래인 것같다.

소녀 뒷쪽으로는 한 남자의 목이 널브러져 있다. 남자의 얼굴은 그리스 조각상에서 많이 본 듯한 형상이다. 소녀 앞에 기다란 톱이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소녀는 적장의 목을 밴 유디트(Judith)임에 틀림없다. 전쟁에서 패할 위기의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그의 목을 벤 유디트의 이야기는 일찌기 조르조네, 크라나흐, 카라바조 등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수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그러나 ‘Judith2’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그린 젊은 작가 신건우(35)는 성서 외경에 나오는 유디트 이야기를 살짝 차용해왔을 뿐이다. 그는 “소녀가 적장인줄 알고 베어버린 게 실은 자신의 왼쪽 팔뚝이었다”며 “인간이 내면 속 악이 싫어 자꾸 잘라내려 해도 결국 그것은 자신의 심연 속에 또아리를 틀고, 언젠가는 다시 꿈틀대지 않겠는가”고 반문했다.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려고 마음 속 악을 단칼에 제거했으나 자신의 몸 한쪽을 잘라낸 소녀를 통해 작가는 인간심리의 양면성과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불가해성을 표현했다.


신건우의 이 그림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네이처포엠 빌딩 내 갤러리2(대표 정재호)에서 ‘기습’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면 회화 속에 소녀의 몸과 적장의 목은 입체로 제작해 부착한 그의 작품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면서도 여러 겹의 서사적 레이어를 지니고 있어 흥미롭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나와 영국의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 슬레이드 예술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조각과 회화를 넘나들며 두 장르를 때로는 따로 따로, 때로는 한 화폭에 혼재시키며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는 릴리프 회화 ‘Judith2’ 외에, 삼면화 ‘기습전(戰)’이 눈에 띈다. 대도심 어딘가의 낡은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알류미늄 판에 인화한 뒤, 색을 칠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레진으로 입체작품을 만들어 부착한 이 세폭의 그림은 동티모르에 파병나갔던 친구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낮설기 짝이 없는 이국으로 떠났던 친구는 동티모르의 종교적, 민족적 상황을 뒤늦게 인지하고, 자신이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기존인식과 커다란 간극이 존재함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친구의 그 복잡다단한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마치 기습을 당한 듯한 친구의 심정을 신건우는 3D와 2D가 공존하고, 우상과 현실 속 인물이 뒤엉켜 있으며, 방관과 개입이 어우러지는 화면을 통해 형상화했다. 이는 곧 한 인간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직면함으로써 전혀 다른 인간으로,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한 남성의 가슴팍에 커다란 군함이 박히는 순간을 표현한 조각 ‘매복되어 있는’과 거리의 창녀인 듯한 여성이 잃어버린 양을 두르고 어딘가로 향하는 조각 ‘여자 양치기’도 출품됐다.
남성 조각상은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의 대표적 놀이감이었던 군함이 남성의 내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발현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또 양을 이고가는 여자 조각은 어째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예수가 늘 서양남성의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것일까 의문을 던지며 정반대로 동양의, 그것도 사람들이 모두 백안시하는 직종의 여성으로 표현한, 다소 엉뚱하면서도 위악적인 작품이다. 02-3448-2112. 신건우의 개인전은 오는 3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제공=갤러리2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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