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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강의' …현대적 해석 눈길
[북데일리] 인문고전이란 산을 오르기 위한 여러 갈레 길이 있다. 예전에는 그 길이 많지 않았으나, 요즘엔 많은 이들이 ‘개척’해 놓았다. 산이 험한 만큼 어느 길 하나 쉽지 않겠으나 저마다 특징이 있다. 평탄하지만 재미가 없는 길이 있고, 여럿이 갈 수 있도록 넓지만 깊이가 없는 길도 있다. 오르다 도중에 길이 끊어지거나 복잡해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중 가장 울창한 숲길 중의 하나는 신영복 선생이 안내하는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돌베개. 2004)다. 가다보면 높이 자란 고목과 기암의 절경, 그리고 탁 트인 전경을 만날 수 있다. 나온 지 10년이 되었고, 그 뒤로 고전 해설서가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지만 여전히 빛나는 길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완숙한 생각이 녹아 있다. 텍스트를 선택하는 일부터 안목과 사상이 작용한다. 풀이와 적용방법 역시 그러하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독법’이다.

신 선생은 ‘시경’의 독법을 ‘문화적 감성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성들 사이에서 광범하게 불려진 시경 속의 시는 고단한 삶의 애환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게 중에는 우리 민초의 신산함을 노래한 내용과 비슷한 시가 있다. ‘초상지풍 초필언(草尙之風 草必偃)’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김수영의 시가 연상된다. 김수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오히려 이 시로 인해 시경이 새로워 보일 것이다. 온고지신의 정반대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책은 논어부터 묵자까지 동양고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시경과 서경부터 논어 맹자, 노자와 장자 그리고 순자와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그 특징과 논지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그 방향성은 ‘관계론’이다. 예컨대 논어하면 보통 ‘인’이 떠오르는 법인데, 그것을 인간관계 그 자체라고 풀이 한다.

그에 따르면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며,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다.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책 속의 예화 하나.

모스크바에서는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노인을 깍듯이 예우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은 ‘그 지하철은 바로 자신들의 어른인 노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저자에게 설명했다. 반면에 우리나라 젊은이는 대개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이다. 신 선생은 이를 두고 충격을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우리나라 젊은이의 대답은 인간관계가 세대 간에 어떻게 단절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242쪽

이 글에서 보듯, 이 책은 독자의 눈으로 읽는 고전이면서 동시에 저자의 눈을 통한 새롭게 읽기다. 저자는 종종 자신이 유독 좋아하는 글을 소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관어해자 난위수(觀’於海者 難爲水)‘가 그것이다. ‘바다를 본 사람은 웬만한 물은 바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따라서 물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이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이 글에서의 ‘바다’는 큰 깨달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법이지요.]

이처럼 쉽게 고전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보면 고전이 왜 고전임을 알 수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의 책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기계’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장자 편에 나오는 이 예문은 오늘 날 화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노인이 우물을 긷는데, 자공이 “왜 ‘용두레’라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계는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한다.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는다.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네.”

지금 자본주의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준엄한 교훈 아닌가. 효율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바로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궁극적인 말이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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