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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대통령 박근혜의 까치밥은
박 대통령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까치밥을 당부해야 할 처지다. 정규직ㆍ노조에는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을 삭감하는 양보를, 기업에는 일자리에 대한 책임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달라고 해야 한다.





만리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중략) 온 세상의 찬성보다/‘아니’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지난 2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모들과 오찬에서 읊었다는 함석헌 시인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다. 숙연해졌다고 한다. 좀 격식 있는 자리에서 이 시는 애송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동석자들은 대부분 반성을 공유한다. “나는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준 적이 없고,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구명대를 내놓기는커녕, 나 먼저 살려고 주위를 제대로 쳐다본 적 없이 살았으니 당연하다”고.

그날,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맞았다. ‘동북아 첫 여성대통령 탄생’. 역사는 그렇게 기록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고자 한다”면서 “하면 된다”고 했다. 늦가을 까치밥을 거론했다. “어려운 시절 콩 한 쪽도 나눠먹고 살았고, 늦가을에 감을 따면서 까치밥으로 몇 개의 감을 남겨두는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했다. 까치밥은 ‘방향 잃은 자본주의의 새 모델’,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모범적 답안’으로 규정했다.

맞다. 박 대통령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까치밥을 당부해야 할 처지다. 공약으로 제시한 고용률 70%, 중산층 70%를 달성하려면 연간 5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정규직ㆍ노조에는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을 삭감하는 양보를, 기업에는 일자리에 대한 책임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달라고 해야 한다. 사회지도층과 부자들에게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위한 헌신을, 어쩌면 빈곤층에도 약속대로 주지 못하는 복지에 만족해 달라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상생과 대통합의 필요충분조건들이다. 그런데 양보와 헌신, 책임을 요구할 때, 특히 스마트폰 정치시대에는 더더욱 따르는 한국적인 뒷말이 있다. “그런 당신은~.”

당선 이후 지금까지, 박 대통령은 집권준비가 부족해 보이고, 야당과의 소통은 오랜 의정생활에 비춰볼 때 소홀했다. 나홀로 인사는 감동보다 실망이 컸다. 51.6% 득표, 뜨거웠던 환호는 한겨울 한파를 겪으며 급속 냉각됐다. 박 대통령의 머릿속은 ‘국민’과 ‘걱정’으로 가득차 있는 듯하다. “정부조직개편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국민과 나라 걱정을 하지 않는 정치집단’으로 야당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 방송 장악 우려를 불식시키는 게 우선이다. 박 대통령은 사사건건 죽기살기로 대립하는 정당 대표가 아니다. 대통령의 길은 통찰(洞察), 통할(統轄), 통합(統合)이다.

스스로 가장 열심히 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했던 이 전 대통령에게 ‘그 사람 가졌는가’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국민의 생각은? 박근혜 대통령의 까치밥? 지금까지는 공허하다. 창조, 미래, 행복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과 함께. 

jpur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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