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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소설가 최인호, “법정스님 껴안고 볼에 뽀뽀하려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10년 새해를 맞자마자 소설가 최인호의 위독설이 터져나왔다. 암 투병 중이며 마침 출간된 신간 ‘인연’이 마지막 유작이 될지 모른다고 술렁댔다. 그해 말 최인호는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냈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기념하는 문집 최인호의 ‘인생’(여백)을 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해 문단에 데뷔한 지 반세기다. 투병생활로 따지면 2008년 여름 암 선고를 받고 5년째다. 그는 이 기간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한다. “아직도 출구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피정 기간 동안 느꼈던 기쁨을 많은 분들께 전하려고 한다”고 그는 책 서두에 썼다.

책은 ‘인생’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달리 보면 죽음에 관한 얘기다.

1부는 가톨릭 ‘서울 주보’에 5개월간 1주일에 한 번씩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으로, 암과 투병하며 삶의 경계에까지 떠밀린 인생을 종교적 깨달음과 엮어 절절하게 담았다. 그의 투병일지는 용감한 전사의 용맹함이 보이는가 하면 떼쟁이 어린아이 같은 발버둥까지 생생하다. 병을 붙들고 매달리고 늘어지면서 한없이 약해지는 마음과 쇠잔해져가는 몸을 일으켜세우고 단련하며 죽음의 위협에 맞서는 모습은 현대판 돈키호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투쟁에는 처절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적을 넘어서려는 어떤 이상주의자의 모습이 보이는 까닭이다.

그는 마음속 평화를 구했다. 기도에 미친 듯이 매달렸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청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말라”는 성 프란체스코 살레지오의 말에서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본 것이다.

그는 투병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게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다고 털어놨다. “나는 내가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다. 나는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에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다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조각을 씹으며 미친 듯이 하루에 원고지 20, 30장을 매일 썼다.

그가 연작소설이라고 부른 2부는 어떤 인연들의 얘기다. 항암치료 중 병실에서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와는 짧게 만났다.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듣고 있던 신부님, 생의 마지막을 수도원에서 보내고자 떠나는 신부를 작가는 말 없이 껴안고 보낸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연이은 죽음 앞에서 그는 아쉬운 인연을 통해 삶과 죽음을 아우른 인생을 얘기한다.

2010년 9월에 쓴 법정 스님에 관한 글은 처음 선보이는 단편소설이다. 그는 법정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5차 항암치료를 마친 지친 상태에도 불구하고 후배 시인과 길상사를 찾았다. 방송국 카메라를 피해 길게 늘어선 문상객 줄을 따라가 배를 올리고 영정사진을 보며 깊은 상념에 빠진 얘기다.

그는 한때 불교에 심취해 전국의 절을 돌아다니며 경허 스님의 일대기인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할 때 도반이었던 무법 스님의 승복을 입고 밀집모자를 쓴 채 압구정동 밤거리를 활보했다. “승복으로 갈아입자 세상과 절연하고 무소의 뿔처럼 유아독존이 되어 홀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 광화문 법련사에서 법정 스님이 손수 끓여준 차를 마시고 손수 우산을 쓰고 거리까지 바래다주는 스님을 보며 갑자기 다정한 형님 같은 생각이 들어 불쑥 스님을 껴안고 볼에 뽀뽀라도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작가가 이들의 죽음을 통해 도달한 지점은 죽음이 생의 끝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꽃과 새들, 성서와 불교의 깨달음을 오가며 펼치는 얘기가 경계 없이 넓다.

책에는 낱장으로 삽화 한 장이 끼어 있다. 1994년 1월, 성 이냐시오 피정(避靜:가톨릭 신자들의 수련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린 상상화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그 앞에 기도하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작가는 이번 책을 내고 피정 중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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