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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화가 이두식교수 별세, 축제처럼 화려했던 삶과 작품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작품의 타이틀 ‘페스티벌(축제)’처럼 화려하고, 강렬했던 삶이었다. 그리곤 갑작스럽게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한국 추상미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화가 이두식(홍익대 회화과) 교수가 23일 새벽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향년 66세.

경북 영주 출신으로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1984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해온 이 교수는 오는 2월말로 정년 퇴임할 예정이었다. 이 교수는 타계하기 하루 전인 22일 오후 5시, 자신의 모교인 홍익대미술관(HOMA)에서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이두식과 표현·색·추상’전의 개막식에 참석한바 있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했던 선후배 작가및 지인들은 고인의 갑작스런 부음에 “어제까지도 혈기왕성했는데 도저히 믿을수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오는 4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화업 40년을 결산하는 대규모 회고전도 준비 중이었다. 

또 숨지기 하루 전인 2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년으로 강단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심정이라 무척 설렌다. 앞으로 새로운 작업에 올인하겠다. 내 그림에서 좋은 기(氣)가 뿜어져 나온다며 수집가들이 좋아했기에 사실 그동안 너무 안주했다. 달라진 그림을 내놓을테니 기대해달라”고 밝힌바 있다.

지난 1960년대 말 데뷔한 이래 고인은 40여년간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왔다. 국내외에서 개인전만 무려 70회를 열었다. 화려한 오방색이 액션 페인팅처럼 흩뿌려진 연작 ‘페스티벌’은 이두식에게 있어 트레이드 마크였다. 또 ‘한국 최고의 마방발 화가’로 불리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예술의전당 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미술행정가로도 활약했다. 또 지난 2007년부터는 부산국제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맡아왔다.

빨강 노랑 파랑 등 화려한 원색을 거침없이 사용하는데다, 상형문자인 한자 등이 어우러진 이두식의 ’동양적 추상’은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방색을 사용해 분출하듯 폭발적으로 그린 것같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여성의 얼굴, 물고기 등이 자유롭게 부유한다. 마음 심(心), 사람 인(人), 생각 사(思)자 등 한자들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돼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높았다.
또 그의 작업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여러차례 소개됐고, 로마의 플라미니오 지하철역에는 가로 8m의 대형 모자이크벽화가 설치돼 있다. 

고인은 생전에 ”요즘에는 국내외에서 유명세도 얻고, 그림도 곧잘 팔리지만 무일푼으로 결혼했던 신혼초는 지지리도 고생이 많았다“며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이발소 그림’을 7년 넘게 그렸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기도 했다. ‘손 빠르고 묘사력 뛰어난 무명작가’로 통하며 수출용 풍경화(주로 해변풍경)를 수도 없이 그렸다는 것.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이 교수는 사진관집 아들이었다. 일본서 사진기술학교를 나와 경북 영주에 사진관을 차린 부친(이중강 씨)을 돕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사진원판 수정작업을 하면서 섬세한 표현력을 연마하기도 했다. 그는 ”유명화가로서 7년이나 이발소 그림을 그린 게 부끄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 생계를 위한 일이었기에 조금도 부끄럽지않다. 밤이면 집에 돌아와 ’내 그림’을 열심히 그렸고, 1976년에는 명동화랑이란 곳에서 첫 개인전도 가졌다. 당시 작품들(’생의 기원’ 연작)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많이 듣는다“며 ”그 때나 지금이나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다작(多作) 화가’였던 고인은 타계 직전까지 약 45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작품들은 대부분 컬렉터들의 손에 들어갔는데 유명세라든가 경력에 비해 그림값이 싼 것도 한 이유였다. 작가로서 높은 곳에서 폼을 잡기 보다,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31호)에 차려졌다. 유족으로는 이하린(미술가), 이하윤(자영업)등이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7시. 02-2258-5940

yr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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