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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종사이클 파괴’가 기업 잡네
[헤럴드경제=김영상ㆍ홍승완ㆍ원호연 기자] #1. 와인 업종의 연중사이클은 전형적인 ‘S’였다. 1년 매출 중 통상 비수기인 7~8월만 홀쭉했다. 그런데 최근엔 ‘H’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매출 하향평준화 탓이다. 전체적으로 장사가 안되고 값이 떨어져 명절이고 평상시고 두드러진 성수기는 없어진채, 여름과 다름없는 빈약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2. 원래 철강업체는 1분기엔 ‘기지개’를 켠다. 봄이 다가오면서 건설이 살고, 자동차 특수도 도래해 철강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철강업체에겐 1분기도 찬바람이 쌩쌩 돈다. 불황과 공급과잉으로 인해 1분기 봄바람은 언젠가부터 옛날 말이 됐다.

재계가 ‘이상기후’ 앞에 놓였다. 지금은 경고 시그널이지만 앞으론 재앙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상기후의 단초는 ‘업종사이클의 파괴’다. 전통적인 성수기, 비수기 공식이 깨지면서 기업 경영계획 수립에 ‘카오스(Chaosㆍ혼돈) 악재’로 등장한 분위기다. 글로벌경기 불황과 엔화 공세 등과 맞물려 기업엔 삼중고, 사중고가 되고 있다.

불황 등으로 소비자 지갑이 얇아진 탓이 가장 크지만, 환율과 원자재 공급 과잉 등 대내외적인 수출 환경 변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도 크다. 그렇잖아도 시나리오별 경영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기업에 더 큰 두통거리를 제공하며 1년 내내 비상경영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자금 여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은 365일을 바짝 긴장하는 숨가쁜 경영시스템으로 전환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일부 업종에선 대책은 없고 한숨소리만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다.

업종사이클 파괴는 전 업종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요즘 불황업종으로 전락한 철강이 대표적이다. 자고 일어나면 널뛰기하는 원자재값과 중국의 과잉 생산 등으로 성수기 특수를 기대하기는 커녕 비수기 수준 이상이라도 매출을 맞춰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다보니 해외 공급처도 1년단위 계약에서 분기별, 월별 계약으로 바꿨고, 이에 원자재값 리스크도 덩달아 커졌다.

두산그룹이 건설에 1조원 가량의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사이클이 붕괴된 채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건설경기에서 기인한다.

스마트기기에도 사이클 파괴는 감지된다. 보통 스마트폰은 1분기가 호기다. 새해 신제품 출시에 대한 기대감과 개학 수요 등이 몰리는 때다. 하지만 이 공식은 깨지고 있다. 올해 1분기는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SA(Strategy Analytics)가 내놓은 지난해 1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총 1억4940만대로, 전분기 대비 4.8%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연초의 폭발적인 스마트폰 수요가 불황 탓에 짓눌려 있는 셈이다.

한국수출호(號)의 핵심인 정보기술(IT) 전체 상황도 마찬가지다. 보통 IT 수요는 2년마다 교차로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 특수로 짝수 해에는 선전하는 게 보통인데, 지난해 정보기술 업체들은 IT 경기 위축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IT로선 업종사이클 외에 ‘경기사이클’마저 파괴된 것이다. IT 부진은 올해 1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위기극복 경영이 절박하게 됐다.

중기 쪽에선 제병업체의 ‘연말=성수기’ 공식이 흐트러졌다. 연말 모임 등으로 주류업체가 성수기를 맞으면, 통상 제병업체 특수로 이어져왔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주류업체들이 원가절감을 한다고 병 재사용 비율을 높이고, 페트병 사용을 늘리는 바람에 제병업체들은 4분기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임상혁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글로벌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기존의 경기사이클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며 “갈수록 기업들로선 경영계획을 짜기 어렵게 됐는데, 좀더 치밀하고 세련된 경영플랜이 기업 생존을 좌지우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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