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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디자인 코리아> 템플스테이 · 록페 · 농촌체험…아날로그의 불편함에 빠지다
리-디자인 유어 라이프<2> 문화소비에 가치를 더하다 ②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현실
사찰에서 찾는 느림의 미학

여름이면 록 페스티벌 열풍
씻고자기 불편해도 수만명 운집

체험이 문화소비의 축 자리매김
삶의 의미 재발견…일상의 동력 찾기도



“하루만 더 머물 순 없을까요?”

여주 신륵사에서 하루를 보낸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우크라이나, 리비아 선수단의 말이다.

지난 28일 여주 신륵사에서는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하는 외국인 선수단을 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열렸다. 여주 도 불교문화와 전통 가옥까지 체험할 수 있으니 먼 길을 온 외국인 선수들에게 쉼과 함께 ‘한국’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매우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낯설고 불편하지만 선수들은 짧은 일정에도 템플스테이의 매력에 푹 빠져 “하루 더 머물겠다”고까지 했다.

디지털 시대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 문화가 각광을 받고 있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는 사찰에서의 시간은 바깥세상보다 더디다. 멀리 떨어진 화장실 덕에 몸은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자극적인 음식도, 푹신한 침대도 없다. 그럼에도 템플스테이를 찾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산하에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은 전국 109개. 입소문을 타고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직장인과 대학생,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리고 있다. 멀리 산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조계종 문화사업단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는 사찰이 서울 도심에만 9개다. 늘어나는 수요에 발맞춰 조계종은 2009년부터 ‘템플스테이’라는 계간지도 발행하고 있다.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인기를 반영해, 2011년부터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판과 스마트폰 어플 형태로도 발간하고 있다”며 “아예 외국인만 전문으로 수용하는 전문 사찰도 15개나 상시 운영한다”고 전했다.

 
사찰에서의 시간은 바깥세상보다 더디다. 멀리 떨어진 화장실 덕에 몸은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자극적인 음식도, 푹신한 침대도 없다. 그럼에도 템플스테이를 찾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디지털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통해 가장 ‘아날로그’적인 문화체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는 셈이다.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느림을 체험하는 문화’는 템플스테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우리 옛것과 전통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사찰이 ‘쉬어갈 수 있는’ 여행지가 된 것은 물론 한옥과 고택도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 관광객 500만명 시대를 연 전주 한옥마을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곳은 관광객 집계가 처음 시작된 2002년 당시 31만명이 방문했으나, 10여년 만인 2012년에는 연 관광객 493만명을 돌파했다. 현대인이 갈망하는 ‘삶의 여유’ 찾아주었다는 데 성공요인이 있다. 전통한옥이 주는 ‘느림의 미학’이 자연스럽게 관광객을 끌어들였는데, 인근에는 400년 전통의 향교와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전동성당 등이 자리잡고 있어 더욱 정겹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즐기는 데는 우리 고유의 템플스테이와 한옥, 고택 스테이도 있지만 ‘서양의 것’도 젊은층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한 번에 수백, 수천곡의 노래를 저장했다가, 금세 지우고 또다시 수천곡을 다운 받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 유통시장이 거대하게 형성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좋아하는 밴드를 직접 보기 위해 무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야외 공연장에 몇 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아날로그적’ 음악감상 방식도 인기다. 흔히 ‘록페(록 페스티벌)’라고 줄여 부르는 음악 축제들이 그런 경우다.

최근 수년 새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등 야외에서 2~3일간 펼쳐지는 음악 공연들은 아웃도어 열풍과 함께 그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다. 자연 속에 펼쳐진 공연장, 무대 옆에 텐트를 치고 밤새도록 음악을 즐긴다.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도 편치 못하지만 해마다 주요 록 페스티벌에는 수만명이 운집해 그 인기를 증명한다.

아날로그적인 ‘체험’이 문화소비의 거대한 축을 이루면서, 가족단위의 주말여행 풍광도 상당히 변모했다. 주 5일제가 보편화되면서, 당일 혹은 1박2일 체험여행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의 계절별 축제와 연계한 농어촌ㆍ산촌 체험 프로그램이다. 도시에서의 각박한 삶을 벗어나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딸기ㆍ사과따기나 갯벌체험 등이 주로 이루어진다.

인터파크투어의 한 관계자는 “초반에는 주로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인 봄ㆍ여름ㆍ가을 상품이 주를 이뤘지만, 체험 여행의 확대로 최근에는 겨울철 빙어잡기 등 계절에 관계없이 다양한 종류의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아날로그 문화는 치열한 경쟁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참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새로운 동력을 얻는 것이다.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즐거움을 주는 대중문화도 본래의 가치가 있지만, 이제 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담은 문화가 생활의 변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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