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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 인간승리의 法심판자, 국민심판에 무릅 꿇다(?)
29일 국무총리 후보를 사퇴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법(法)의 심판자로서 평생 ‘남면(南面)’의 삶을 살았다. 명예직인 인수위원장을 맡을 때만해도 그는 여전히 남면의 위치, 흔한 말로 ‘갑(甲)’이었다. 하지만 국무총리 후보자를 수락하는 순간 위치는 북면(北面)으로 바뀐다. 법으로 심판하는 자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자가 됐다는 뜻이다. 국무총리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도, 동의권자인 국민에게도 ‘을(乙)’이다.

아직도 그가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확실해 보이는 것은 평생 심판하는 위치에 섰던 그가, 누군가의 심판을 받는 데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법의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아들 병역이나 재산관련으로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치명적이다.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는 ‘무죄’일텐데, 여론은 마치 ‘유죄’인양 몰아가는 상황이 억울했을 수 있다.

성문법은 ‘유전무죄(有錢無罪)’도 인정하지만, 국민정서법은 ‘무전무죄(無錢無罪)’만 바란다. 헌법 13조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세겼지만, ‘가족의 허물은 가장(家長) 책임’이라는 게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민정서법이다. 이 같은 정서 괴리에 75년간 법과 함께 한 자부(自負)의 삶, 인간승리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좌절을 느꼈을 듯도 싶다. 지인에게 했다는 “죄는 안지었지만 존경받는 총리가 되긴 틀렸다”는 말에는 깊은 좌절이 베어있다. 과욕이란 ‘비아냥(?)’도 거슬렸을 법 하다.

일각에서는 대법관과 헌법상 독립기관인 헌법재판소장까지 지낸 김 위원장이 인수위원장은 몰라도 총리직까지 수락한 것은 3권 분립과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인수위원장이야 엄밀히 따져 공직(公職)은 아니지만, 총리는 행정부에 속한 공직이다. 국가의전서열도 헌재소장(4위)이 총리(5위)에 앞선다.

김 위원장은 29일 사퇴문에서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라고 했다. 대신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은 접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모시던 이를 버리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고, 모시던 이와 함께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仕而棄之 卽不忠, 與同患難 卽不智)’이란 옛말이 있다. 김 위원장의 사퇴, 불충을 무릅쓴 지혜로운 선택일까?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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