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딸로 70년 엄마로 35년
신달자 에세이...굴곡진 여성 삶 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 1위는 mother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황수관 교수의 강연 내용이다. “엄마.” 부르기만 해도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뭉클거리는 까닭은 원인모를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딸로 태어나 여자로 살다 세상의 엄마가 되는 이들에게 ‘엄마’는 남다른 단어다. 특히 엄마와 딸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예민한 관계다. 그들을 마치 자웅동체처럼 서로를 이해하지만 표현의 잘못으로 상처를 내기도 한다.

<엄마와 딸>(민음사.2012)는 신달자 시인이 네 가지 시선으로 풀어낸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해 ‘딸로서 바라보는 엄마’, ‘엄마로서 바라보는 엄마’와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어져 ‘엄마로서 바라보는 딸’ 그리고 ‘딸로서 바라보는 딸’이 그것이다.

딸의 이름으로 70년을 살아온 신달자 시인에게 엄마란 남다른 존재였다. 책에 따르면 시인의 모친은 전쟁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딸들을 모두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에서 공부시켰다. 시인이 고향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강제로 퇴학을 시키고 부산으로 전학시킬 정도로 열성이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일이 감사하다고 소회했다. 바로 그 부산 학교에서 ‘시’가 당선 됐고 대학 진로도 결정됐던 것. 시인은 자신이 마흔에 석사 학위를 받고 쉰에 박사 학위를 다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교육에 대한 심기가 결국 자신을 공부하게 만든 것이라 고백했다.

사춘기 시절 엄마를 싫어했다며 심경을 털어놓는 시인의 솔직함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엄마와 딸 사이에 존재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관계에 대해 작가는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엄마와 딸은 왜 그 어떤 관계보다 복잡하고 예민하며 죽도록 사랑하는 관계인가. 그것은 아마도 엄마는 딸이, 딸은 엄마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독립성이 없는 두 가지 생이 두 가지 얼굴이 겹쳐지면서, 자신이 싫듯 싫어하고 자신이 안쓰럽듯 안쓰러워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엄마 속에 딸이 있고 딸 속에 엄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5쪽~16쪽

서로에게 자신을 투영해 엄마는 딸의 잘못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딸도 엄마의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 결국 생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여자, 딸, 엄마라는 공통의 이름을 가짐으로써 서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같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책은 이제 35년을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엄마가 되고서야 모친의 마음을 알게 된 시인이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진한 감동을 전한다.

사랑하는 내 딸들아.

그래, 한 여자의 생이 저물고 한마디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나는 너희들을 향해 “딸들아.”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을 것 같아. 그런 날 내가 너희 이름을 각각 부르지 않더라도 이해해라. 이름을 부른다면 너희들 가족 이름을 다 불러야 하는데 아마도 힘이 없을지 몰라. “딸들아.”라는 말 속에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가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216쪽

[북데일리제공]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