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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여는 0원...한인 최초의 페루의 시장된 정흥원 찬차마요 시장의 성공기
-“‘한국인은 다르다’ 밀어준 이들 위해 한국인 특유의 근성, 신뢰로 보답할 것”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한인의 중남미 이주사라면 흔히 ‘애니깽’을 떠올린다. ‘살인 더위’를 방불케하는 뙤약볕, 선인장 농장에서의 고통스런 노동 등. 그러나 자원과 잠재력이 숨어있는 땅, 중남미에서 107년의 역사를 겪는 동안 이주 한인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를 몸소 보여주는 이가 정흥원(66) 페루 찬차마요 시장이다.

정 시장은 2010년 한인 최초로 페루에서 시장직에 올랐다. 이후 모국과 다양한 협력을 바탕으로 시정을 이끌다 최근 찬차마요의 주력 농산물인 커피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게 됐다.

찬차마요 커피를 모국에 소개하게 된 정 시장은 한껏 들떠있었다. 단순히 판매처를 늘렸다는 기쁨이 아니었다. 정 시장은 “찬차마요 커피 수출처가 늘어나는 것은 비로소 ‘커피 제 값 받기’가 자리잡게 됐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농민들이 수확한 커피가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수많은 중간 상인들을 거칩니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값이 100원이라면 농민한테 가는 건 7원도 안돼요. 중간 상인들은 안정적으로 커피를 팔길 바라니까 질이 낮은 커피에 좋은 커피를 적당히 섞어서 팝니다. ‘좋은 커피는 15원 나쁜 커피는 5원’ 이런 식으로 차등이 있어야 하는데, ‘좋은 커피 10원 나쁜 커피도 10원’이 됩니다. 당연히 찬차마요 커피에 대한 신용이 떨어지고 농민들도 좋은 커피 수확하기 위한 노력은 안하게 돼요.”

정 시장은 취임 하자마자 이 같은 관례에 매스를 댔다. 중간 상인들이 커피를 섞어서 눈속임을 하지 못하도록 직거래를 시작했다. 농민들에게는 “좋은 커피는 제 값 받고 팔자”며 수 없이 설득했다.

동시에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 농촌 지도교사를 파견해 커피 품질 향상도 도모했다. 화학 비료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작하는 법도 강조했다. 수년의 노력 끝에 경매에서도 좋은 품질을 인정받고, 직판 경로도 늘었다.


그 동안 커피 섞기 등의 부당함을 겪으면서도 농민들이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찬차마요는 가난하고 힘 없는 도시였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315㎞ 떨어진 아마존 밀림 초입 지역. 정 시장은 “10년 전 판잣집은 10년이 지나도 판잣집이고, 그릇이 깨져도 새 물건을 살 수 없는 동네”라고 한 마디로 요약했다. 이런 곳에 어떤 매력이 있어서 정 시장이 자리 잡았을까.

그는 1986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살다가 1996년 풍광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웃나라인 페루의 찬차마요로 여행을 왔다. 그는 찬차마요의 첫 인상을 “너무 아름다웠다”고 떠올렸다.

“밀림 지역이었는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한 번 보고 바로 ‘여기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개발이 안 된 곳이고, 수림이 울창한 밀림 지역이다 보니 물이 아주 좋더라고요. 물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이주해 허가를 얻고 생수 사업을 시작했죠.”


풍경에 반해 이주했지만 막상 살면서 보니 눈에 걸리는 것이 빈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이었다. 병이 들었는데 돈이 없어 치료 한 번 못받는 일이 허다했고, 수해가 날 때마다 집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정 시장은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 명한테 수술비 주고 나니,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이 ‘나도 좀 도와달라’고 찾아오더라고요. 그렇게라도 도울 수 있는 경우는 차라리 낫죠. 나도 당장 돈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힘들게 찾아왔을텐데 빈 손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특히 찬차마요시의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눈여겨봤다. 찬차마요는 밀림지역이라 청소년들이 방과후에 할 만한 일이 없고, 부모들은 대부분 커피 농사에 바쁘다. 할 일이 없다보니 청소년들이 마약에 젖는 일이 허다했다. 고민 끝에 정 시장은 페루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박만복 감독의 도움을 얻어 배구대회를 시작했다. 학교 대항전으로 대회를 열고,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대우일렉의 TV와 세탁기, 라디오 등을 상품으로 걸었다. 배구대회는 아이들로 하여금 방과후 체육활동에 몰두하도록 해줬고, 찬차마요 전역의 축제가 됐다.


부지런히 뛰다 보니 그는 어느새 ‘빈민의 대부’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리오 정’(정 시장의 현지 이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정치권에서 부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다. 페루는 외국인이어도 현지에 2년 이상 거주하면 피선거권이 주어진다. 그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숱하게 거절해왔다.

“여러 정당에서 제의가 왔지만 현지어도 완벽하게 못하고, 한국 사람이라 시장 자격 없다고 고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한국 사람은 건실하고, 경제 성장 이룬 걸 보니 머리도 좋다는 거야. 페루 거리 나가보면 다 현대차고, LG나 대우에서 만든 전자제품이 최고 인기거든요. 이런 것만 봐도 한국 사람들은 재주가 뛰어나다는 거죠.”

그는 고심 끝에 선거에 나선 이후에도 한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인으로서 약속을 꼭 지키겠다”라는 말을 유세 때마다 내세웠다. ‘빈민의 대부’답게 공약의 핵심은 농민들 생활 수준 향상이었다. 결국 2010년 10월 선거에서 그는 유권자 9만6000여명 중 34.8%의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됐다. 당시 이미 3선을 했고, 내리 4선에 도전했던 현직 시장을 누른 결과여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후 공약 실현을 위해 모국과의 협업을 추진했다. 우선 찬차마요에 한 곳도 없었던 대형병원을 짓는 일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250만달러 상당의 지원를 얻어 병원 건립을 추진중이다.

찬차마요시의 당면 과제는 상하수도 시설이다. 찬차마요시는 상수도는 있지만 하수도가 없다. 상수도 시설도 시 인구 중 10%만 그 혜택을 받고 있을 뿐이고. 저장시설이 없어서 만성적인 물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상하수도 문제는 서울시에서 지원을 얻어 해결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기술자문을 얻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는 페루의 공무원 6명에게 상하수도 시설 관련한 연수를 일정 기간 제공하기로 했다.


그는 시장 급여를 받지 않는다. 급여는 전액 빈민들의 의료비로 기부되고 있다. 그는 ‘무일푼 시장’을 자처한 이유에 대해 “페루에서는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도 돈을 먼저 내지 않으면 치료를 안해준다”라며 “돈 없는 이들은 병원에서 손도 못쓰고 죽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현지에서 그의 인기는 왠만한 연예인을 넘어설 정도다. 정 시장은 “브라질에서 일주일 동안 버스를 타고 보러오는 사람들도 있고, 칠레에서 노인분들이 해발 4800m 안데스산맥을 넘어서 찾아오기도 한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서울의 커피 관련 행사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부산에서 왔다는 한 시민이 정 시장을 보고 사인 한 장을 부탁했다. 그는 역시 사인을 하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1년 11개월여 후에 시장 임기가 끝나면 연임에 도전하지 않고 시민으로 돌아가, 이후 생(生)을 다할 때까지 찬차마요에서 살 것이란 그에게서 빈민들이 찾았던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글=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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