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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아침,새로운 사실주의의 세계로 들어가볼까?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그림 속에서 맨발로 출발선에 선 이는 인디언 출신의 스포츠영웅 짐 도프(1887~1953)이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프래그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홀홀단신이 된 도프는 악취 나는 하수도공사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중 타고난 운동실력이 드러나며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 철인 10종 경기 및 5종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미국은 물론 세계를 뒤흔드는 쾌거였다.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5세는 도프의 활약에 매료돼 두개의 금메달 외에, 자신의 브론즈 흉상과 보석이 박힌 바이킹 배를 안겼다.
그러나 그는 대학 재학시절이던 1909년 여름방학에 주급 25달러를 받고 프로야구 마이너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사실이 밝혀지며 메달을 박탈당했다. 그 무렵은 순수 아마추어리즘이 너무나 엄격하게 적용되던 시절이었다. 


이같은 흥미로운 올림픽 영웅스토리를 접한 젊은 화가 김성윤은 빼어난 묘사력으로 이 비운의 스타를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림의 타이틀은 ‘Jim Thorpe Getting Ready To Start’(2010)이다.
대상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한 작가는 ‘스포츠 영웅의 건각’을 진한 음영으로 강조하며 긴장감있는 그림을 완성했다.

그런데 포토 리얼리즘을 색다르게 구현한 김성윤의 그림은 인체의 의도된 어색함과 묘한 불일치를 드러낸다. 엄격한 포토 리얼리즘을 살짝 비껴난 듯한 바로 그 지점이 감상자에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왼쪽 발이 백색의 스타팅라인을 살짝 밟고 있는 것과, 출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좁게 놓인 푯말도 애매함을 더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펄펄 끓는 활화산처럼 뛰고 던지고 구른 끝에, 이제는 전설이 된 올림픽 아카이브 속 스포츠스타를 오늘에 불러내, 그의 감춰졌던 면모를 화가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되살려낸 셈이다.
육상은 물론 ML과 NFL을 두루 섭렵하며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영웅’으로 각인됐던 도프는 세상을 뜬지 30년 만에 2개의 금메달을 돌려받으면서 저승에서나마 한을 풀었다.


김성윤이 그린 짐 도프 그림을 비롯해 데이비드 오케인 (David O’kane, Irish), 스신닝(Shi Xinning, Chinese), 이석종, 김성윤, 웬우(Wen Wu, Chinese)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Divergence전’이 서울 서초동 갤러리바톤(대표 전용진)에서 열리고 있다.

사실주의적 화풍에 기반을 둔 신진 ∙중진 작가들의 그림을 한데 모은 이번 기획전은 전시타이틀인 ‘Divergence(분기:分岐)’에서도 알 수 있듯 유사한 장르와 기법을 탐구하는 작가들의 오늘을 조망하는 것과 함께, 향후 이들 작가들이 자신이 속한 환경과 관심사를 어떻게 탐구하고 심화시켜 어떤 미학적 발전을 이룰지에 주안점이 맞춰졌다.


갤러리바톤의 전용진 대표는 “전시의 키워드인 분기점은 사실주의에 기반한 독일 현대 구상회화”라고 밝혔다. 즉 작금의 현대미술계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치를 드높이며 네오 라이프치히학파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네오 라흐(Neo Rauch,52) 등 일군의 작가로부터 유무형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업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데이비드 오 케인은 숫자로 가득찬 벽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을 연작으로 그린 뒤, 이를 1분8초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Blackboard’(2008년)를 출품했다. 또 스신닝의 2006년작인 ‘An Unknown Mountain’ 또한 흑백톤의 그림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또는 뤽 타이먼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석종의 ‘Triumvirate’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이미지들을 실사와 실크스크리닝 기법으로 조합한 작품이다.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이 한데 뒤섞이며 기묘한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다.

장미꽃이 그려진 꽃무늬 벽지를 배경으로 담배를 문 남자를 멜랑코리하게 묘사한 웬우의 그림 ‘Venus is a boy’(2010)는 일견 리얼리즘이 강조된 초상화같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뭉갠 듯한 배경과 의상, 시니컬한 표정, 작은 나체조각을 가슴에 품고 있는 모습은 낯설기 짝이 없다. 기존 사실적 초상화의 틀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새로운 사실주의의 매혹을 선사하는 그림이다. 전시는 1월15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제공 갤러리바톤. 02)597 -5701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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