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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용의 시, 화가 12명이 그림으로 읊다..시가 있는 그림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졸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중략).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鄭芝溶,1902-1950) 시인의 저 유명한 시(詩) ‘향수’다, 이 시에 맞춰 화가 황주리는 그림 ‘향수’를 그렸다.
황주리는 커다란 선인장 화분을 그린 다음, 삐죽삐죽 솟은 선인장들에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지난 순간을 새록새록 그려넣었다. 자전거를 타며 살포시 입을 맞추는 청춘, 실연의 아픔에 괴로와하는 남자, 5월의 풍선 밑에서 함께 춤을 추는 남녀... 이들의 모습은 바로 나의 지난 모습이다.


시(詩)와 그림을 함께 흠미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청담동 갤러리서림(대표 김성옥)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1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다양한 작품 20여점이 내걸렸다. 출품작가는 원로작가 박돈 화백을 필두로, 이두식 윤장열 박영하 이희중 황주리 김선두 정일 이명숙 노태웅 고완석 황은화 씨 등이다.

갤러리서림은 지난 1987년부터 해마다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시(詩)가 있는 그림전’을 개최해왔다. 올해는 그 스물여섯번째 전시회이다.
제 26회 전시회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지용선생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선생의 시를 사랑하는 12명의 화가들이 지용의 시를 그림으로 재탄생시켰다.


박돈 화백은 ‘오월 소식’에서 멀리 있는 연인을 그리는 시인의 애틋한 심정을 서정적 화폭으로 표현했다. 이두식 작가는 지용 시인의 ‘불사조’를 택했다. 추상표현적 기법으로 시인의 비애를 강렬한 오방색에 담았다.
화가 박영하는 아들을 잃은 지용 시인의 절절한 심정이 담긴 시 ‘유리창’을 담담한 무채색빛 연작으로 표현했다. 김선두는 지용 시인의 시 ‘별’을 아름답고 강렬한 푸른빛 석채로 환상적으로 그려냈다.

그간 ‘시가 있는 그림전’은 26회의 전시를 통해 463편의 시를 108명의 화가들이 회화, 판화, 조각, 설치 등의 미술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시가 있는 그림전’은 화가들이 평소 좋아하는 시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글자가 들어가지 않는 시화(詩畵)이며, 이 방법은 갤러리서림이 지난 1987년 처음으로 기획해 근래에는 많은 화가들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


그 자신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26년째 이 전시를 기획해온 김성옥 갤러리서림 대표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과 시는 캘린더로 만들어져 매달 시 한편씩을 감상하거나 암송하면서 일상에서 시와 그림에 대한 식견과 정서를 키울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예전에는 문인, 화가, 연극인, 음악인 등 서로 다른 분야 예술가들이 활발히 교류하며 담론을 펼쳤으나 요즘은 그같은 문화적 풍토가 사라져 아쉽다”며 “올해로 26년째 ‘시가 있는 그림전’을 개최해오며 화가들은 시를 다시 읽고, 시인들은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앞으로도 이같은 시도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02) 515-3377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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