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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없는 옛 장인이 만든 단아한 목안(木雁), 사랑을 품었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통통한 몸집에 비해 목선은 더없이 날렵한 기러기가 입에 청실홍실을 물고 있다. 조선시대 이름 없는 장인이 만든 ‘목안’(木雁)이다. 군더더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간결한 조형미가 오늘 다시 봐도 멋스럽다.

나무기러기는 전통혼례에 쓰이는 중요한 기물로,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한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아들을 둔 집에서 기러기를 기르다가 아들의 혼례식 때 신부에게 이를 전달해왔다. 기러기는 평생 하나의 짝만 고집할 정도로 사랑이 도타운 새로, 이 풍습이 나무기러기로 대체돼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예화랑(대표 김방은)이 조선시대 나무기러기 80여점을 모아 ‘목안(木雁), 꿈을 그리다’ 전을 열고 있다. 목안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21세기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그 빼어난 조형성을 다시금 살피기위해 기획된 이 전시에는 원로화가 김종학 화백를 비롯해 수집가 8명이 소장한 목안 80여점이 나왔다.

목안은 기본 형태는 비슷하지만 크기나 표정, 디테일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것처럼 활달한 기러기가 있는가 하면 새침한 신부처럼 사랑스런 기러기도 있다. 또 현대의 미니멀리즘은 저리 가라 할정도로 절제미를 갖춘 세련된 나무기러기도 있다.
비록 그 색이 바랬지만 청홍색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목안도 있고, 의젓한 선비처럼 기품을 갖춘 목안, 해학미가 넘치는 목안까지 다양하다. 또 나무 고유의 물성과 나이테를 그대로 살려 깃털과 날개를 정성껏 표현한 목안을 만나면 옛 장인의 솜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목안은 오브제로서 현대의 어떤 조각품에도 뒤지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이제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목안들은 약 100년~2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저마다 개성을 품고 있어 만든 이의 성품까지 헤아려진다.
사진에 등장하는 목안은 내설악에 살며 설악의 풍경을 질박하게 그려온 화가 김종학이 수집한 것이다. 독특한 그림과 함께, 남다른 눈썰미를 갖춘 목기 컬렉터로도 유명한 김 화백은 “조선시대 목안은 양반가에서 썼던 단아한 목안에서부터 흙냄새 풀풀 나는 목안까지 생김생김이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에는 김 화백이 그림을 그려넣은 목안도 출품됐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조선시대 혼례에 사용했던 목안은 개인이 직접 소장하지 않았다. 마을 단위에서 공동으로 마련해 오복(五福)을 모두 갖춘 집에서 관리했던, 일종의 공동체적 자산이었다.
전시에 나온 80여마리, 거대한 무리의 목안은 ‘나 혼자’ 혹은 ‘우리 식구’만 잘 살아보겠다는 바램을 표표히 떨치고, 우리 집안에 들어온 복을 이웃과 기꺼이 나누려 했던 옛 조상들의 너른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한국의 대표적 목기 수집가들이 찾아낸 아름답고 기품있는 목안과 함께 힘들었던 2012년을 훌훌 털어버릴 것을 축원하는 이번 전시는 27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제공 예화랑. 02)542-5543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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