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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시대는 통치자 보다는 조율자를 원한다
아직 거대담론의 시대인가. 거대담론은 사회가 성숙되지 못하던 시기의 찌꺼기다. 거대담론 논쟁은 구도 싸움이다. 해방 직후 좌우익 대결, 3~6공화국에 이르는 민주-반민주 논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1987년 이후를 보자. 이른바 ‘형식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25년의 세월은 어떻게 하면 국민이 일한 만큼 대가를 얻고, 귀천의 차별없이 대접받을 수 있는지 등의 ‘실질적’ 민주주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민주 대 반민주이니, 좌파니 우파니 하며 논란할 시점은 아닌 것이다.
대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열린 대선후보 2차토론에서도 구태에 가까운 구도싸움은 이어졌다. 이를 테면 친재벌이냐 친서민이냐, 양극화를 초래한 것이 현 정권이냐, 노무현정권이냐 하는 식이다. 그나마 모든 후보가 중산층 복원을 말했지만, 방법론은 보이지 않았다. ‘구도’ 싸움으로는 방법론을 찾기 어렵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원화되고 복잡해진다. 서민이 기업에 고용되고, 그로부터 생활비를 벌어 애들 교육시키고 그 자식은 다시 기업에 취직해 일하는 과정이 국부창출의 과정이라고 보면 우리 사회에 갈라 놓고 볼 요인들은 거의 없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는 말처럼 하나의 사회 현상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녹아 있다. 해법 역시 종합적인 안목 속에서 설득과 토론을 통해 도출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학교폭력, 청소년 스트레스 문제가 나오면 당국은 인성교육 강화, 수능 과목수 줄이기를 대책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학교 스트레스는 치열한 경쟁 압박에서 오는 것이고, 폭력 가해 학생들의 상당수는 경쟁에서 낙오된 아이들이다. 몇 점 차이로 대학에 떨어지고, 취업시험에 미끄러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안다. 10~20대 삐끗하면 박봉으로 살며 내집 마련, 자녀교육 때문에 평생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와도 무관치 않다.
청년 실업,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 문제가 대두되면 정부는 으레 기업에 ‘청년을 더 뽑으라’고 압박한다든지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라’는 식의 판에 박힌 정책만 뇌까린다. 그러나 따져보면, 취업 재수생의 양산은 점수 몇 점 때문에 상위 등급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이 중하급 인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승자독식 구조와 관련이 있다. ‘유전 스펙, 무전 알바’, 가난의 대물림….
이처럼 양극화-서열화-경쟁-청소년 우울증-OECD 자살률 1위-늘어나는 노인범죄-법치 불신-일탈행위 식으로, 한편으론 대기업 규제-투자위축-고용 경색-경기침체-서민생활 불안-교육기회 박탈-취업여건 악화 식으로 모든 사회 문제는 서로 얽혀 있다. 자연히 한 측면의 해법만 제시하면 다른 영역과의 길항작용(상반되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 작용해 그 효과를 서로 상쇄시키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구도 싸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박근혜는 “국민 마음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고 책임있는 변화를 도모하겠다”며 “경제민주화로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를 확립하면 중소기업도 신바람 나게 일하고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논리상 인과관계를 알 수가 없다.
문재인은 “어머니 같은 정부를 만들겠다. 부도 지위도 대물림되는 국민 절망의 시대이다. 좋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일자리 나누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을 너무 과소평가했고 대안이 잘 안보인다.
차라리 이렇게 얘기를 하라. “일한 양과 질에 무관하게 더 벌고 덜 버는 요소가 있는지 국부의 분배구조를 전면적으로 살펴보겠다” “간판이나 계층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제도는 모두 손질해 박탈감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헛된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진정성을 심고 설득력을 갖추라.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 실질적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해, 차기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닌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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