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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그들의 겨울은 추웠다]<2>쪽방촌 사람들 ‘20년 쪽방 생활 용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도 쓸쓸히 혼자였다’
[헤럴드경제=박수진ㆍ정태란 기자] 쪽방촌 사람들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용용춘(70) 할머니가 이 곳에서 얼마나 오랫 동안 홀로 살아왔는지.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서울의 대표 쪽방촌인 ‘영등포 쪽방촌’. 10년 전부터 상담소장을 맡아온 김형옥 영등포쪽방상담소장도, 주민 정동기(52) 씨도 이곳에 처음왔을 때부터 용 할머니를 봐왔다.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물건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용 할머니. 기초생활수급자로 한달에 43만원을 받았고 이중 절반은 쪽방 월세로 냈다. 나머지 20만원과 물건을 팔며 근근이 번 돈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다. 쪽방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용 할머니는 늘 혼자였다.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도, 가족이 그립다는 이야기도 전혀 듣지 못했다.

수년 전, 용 할머니는 당뇨가 악화되며 행상일 마저 접어야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썩기 시작했다. 결국 양쪽 발 모두 넷째, 다섯째 발가락을 잘라냈다. 다리도 퉁퉁 부어올랐다. 걷는 것마저 힘에 부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쪽방촌 주민들을 돌보는 영등포쪽방상담소와 광야교회의 도움으로 용 할머니는 최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지난 5일 돌연 상태가 악화됐고, 급기야 숨을 거두었다. 쪽방상담소와 영등포구청이 용 할머니의 연고를 찾기 위해 수소문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난 7일 경기도 벽제화장터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가족 대신 김 소장 등 쪽방촌 식구들 몇몇 만이 참석했다. 가족의 행방도 모른채 10년 넘는 세월을 홀로 쪽방촌에서 보내온 용 할머니는 마지막 가는 길마저 쓸쓸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이렇게 지병 등으로 사망하는 주민은 매년 평균 10명, 이중 절반은 용 할머니처럼 끝내 가족을 찾지 못한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용 할머니의 이야기는 남 일 같지 않다. 매서운 바람이 나무 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방 한 가득 한기가 들어차는 겨울이 오면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하루 하루가 사투다. 보일러는 고장나기 일쑤다.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놓고 보일러를 돌릴 수도 없다. 웬만한 추위는 참는다. 성인 남성 두명이 채 누울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옷을 여러겹 껴입고 누워 버텨본다. 각 기업이나 단체에서 후원품으로 보내주는 무릎 담요, 이불, 전기장판 등이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이모(58ㆍ여)씨는 “지난 해 후원받아 새로 들인 보일러가 고장나 일부 쪽방에 전혀 난방이 되지 않고 있어요. 집주인은 모른 체하고 보일러 회사에서는 후원한 쪽에 연락하라고 미루는 상황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언제 고쳐질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두께 3㎝정도의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문이 쪽방의 추위를 그나마 막아준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기저기 부서지고 구멍난 곳이 많다. 일부 노숙자들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 문을 부수고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정자(72ㆍ여) 씨는 최근 부서진 문을 얇은 창호지를 여러장 덧대 임시방편으로 막았다. 밤에 잠을 잘 때도 옷을 몇 겹 껴입지 않으면 추위를 참기 어렵다. 그래도정 씨는 “나는 방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서울 영등포, 돈의동 쪽방촌 등을 비롯해 전국의 쪽방촌 거주 인구 약 10만여명 정도가 비슷한 처지다.

무료 급식이라도 지원되는 곳은 ‘천국’이다. 500여명의 영등포 쪽방촌 주민을 돌보는 임명희 광야교회 목사가 운영하는 ‘광야홈리스센터’는 정부 지원 및 민간 후원을 받아 주민들과 인근 노숙자들에게 매일 세 끼를 지원한다. 지난 해까지 6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왔는데 올 해는 서울역에서 쫓겨난 노숙자들까지 시설에 몰리면서 끼니마다 평균 60~100명이 늘어났다.


평균 650~750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 돈의동 쪽방촌은 정기적인 무료 급식이 없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주민들 중에서도 일부 몸이 불편한 사람들 10여명에게만 구청에서 도시락을 지급한다. 나머지 주민들은 후원품으로 들어온 라면, 김, 김치, 쌀 등을 배분 받는다. 후원품이 없으면 끼니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경기 불황에 한파까지 겹쳐서일까. 일부 쪽방촌은 올 해 후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화순 돈의동쪽방상담소장(전국 쪽방상담소협의회장)은 “후원금을 보내던 기업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다. 돈의동의 경우 지난 해보다 후원이 3000만원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에 들어왔던 연탄 후원은 지난 해 2만장에서 올해 4만장 정도로 늘어났지만 전체적인 후원 규모는 줄어든 상태다.

서울시청 자활지원과 관계자도 “올 해 경기가 좋지 않아 후원이 크게 줄었다. 쪽방촌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쪽방촌이 개인의 사유재산이다보니 지자체의 개입에도 한계가 있어 안타까운 면이 많다”고 말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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