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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자의 딸"-"노무현 후계자"... 외신도 비웃는 과거전쟁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21세기 하고도 12년이 흐른 2012년, 세계 무역규모 8위, 경제규모 13위의 선진국인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전으로 뜨겁다.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의 경고음이 그 어느 때 보다 크게 울리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의 화약고 한반도 한 가운데의 균형을 잡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리더를 뽑는 선거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화두는 ‘과거’다. 경제위기 해결, 동북아 정세 안정, 국제사회의 공조 같은 ‘미래지향적’인 단어는 어느 후보의 연설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대선을 바라보는 외국 언론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소개하는 단어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수식어에는 항상 ‘노무현’이 자리잡고 있다.

CNN은 ‘‘전 대통령의 딸(daughter of former president)’로,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과거 독재자 대통령의 딸(la fille d‘un ancien président-dictateur)’로 박 후보를 설명했다. 뉴욕타임즈가 지난 9월 한국 대선 관련 기사에서 “한국인들의 선택은 죽은지 33년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달려있다”고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후보 역시 ‘노무현의 협력자(ally of former President Roh Moo-hyun)’(뉴욕타임즈), ‘노무현 정권 탄생 후 최측근으로 요직을 역임한 콤비’(요미우리)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외신들의 이상한 시각은 후보들 본인이 자초했다. “폐족 정권의 실세. 말 바꾸고 책임 안지는 정치 세력”이라며 문 후보를 공격하는 박 후보의 가시돋친 말, “유신독재의 잔재로 5ㆍ16 군사쿠데타를 미화할 것”이라는 박 후보를 향한 문 후보의 낙인찍기는 이번 선거를 대하는 미래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각 당의 선거 전략도 마찬가지다. ‘수권 세력과 불안한 세력의 대결’, ‘민주주의와 독재정권의 경쟁’ 구도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전을 만들겠다는 새누리, 민주 양 당의 전략은 필연코 과거를 꺼낼 수 밖에 없다. 경제위기를 돌파하고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혜안, 재정 건전성을 해치치 않으면서도 복지를 늘릴 방안, 한반도 주변 4강 모두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외교, 안보 전략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 같은 유력 대선 후보, 그리고 거대 정당들의 과거 전쟁은 새 정치를 갈망하던 유권자들까지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포털사이트가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대선 관련 이슈에는 항상 ‘박정희’와 ‘노무현’이 빠지지 않는다. ‘정수장학회’, ‘NLL(서북방한계선)’ 같은 과거에 기반한 단어들이 때에 따라서는 핵심 이슈 가장 한가운데 위치하기도 한다. 최근 SNS 이용자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던 연예인들의 특정 후보 지지, 또는 반대 발언들 역시 ‘과거’와 연관된 것들이다.

반면 공약, 정치쇄신, TV토론, 유세현장 같은 단어들은 자칭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SNS 이용자들의 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과거가 한 가운데 자리잡은 지금의 대선을 “정상이 아닌 상황”이라고 비판한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 선거는 미래 가치를 놓고 경쟁해야 하지만 방향성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현재 진보 대 보수 구도 역시 과거로부터 비롯된 진보 대 보수”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역시 “후보 간 차별성을 가져올 정책을 만들 능력이 없다보니 치열한 검증도 없는 것”이라며 “대신 (과거에 대한) 네거티브와 포퓰리즘만 남았다”고 한탄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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