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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뱃사공 정치’ 는 양보할 수 없다
‘정책검증’ 운동주도 심판서 ‘대선’ 선수로 등판한 강지원…보수 · 진보 모두에 초당적 정치 주문
사람들의 관심은 ‘박근혜, 문재인’에게만 쏠려있다. TV 뉴스도, 신문도, 인터넷도 온통 두 사람 이름뿐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3억원을 기탁하고 후보 등록을 마쳤다. 무소속 강지원 후보다. 다른 군소 후보들이야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조직의 명분 때문이라도 출마해야 한다지만, 정당도, 조직도 없고 당선 가능성도 스스로가 낮다고 말하는 그가 적지않은 사비를 써 가며 왜 18대 대선에 출마하고, 또 완주를 다짐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아직 내가 출마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그나마 아는 사람들도 지지율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의자에 마주앉은 강 후보의 첫 마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밝아지고 있다는 게 주변의 말이다. 강 후보는 “처음에는 친구들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무실에 왔는데, 막상 와서 즐거워하는 얼굴 보고 다들 안심하고 갑디다”며 즐겁게 하는 선거운동을 강조했다.


강 후보의 출마 이유는 ‘메니페스토’다. 그동안 ‘메니페스토’ 운동을 열심히 해왔지만, 공약은 뒷전이요 세력 싸움, 이미지 포장으로만 흘러가는 우리 정치 현실을 참다못해 직접 모범을 보이고자 나섰다는 설명이다.

인터뷰 초반 나지막하게 말하던 그도 메니페스토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강 후보는 “정책 검증은 실종되고, 공개 토론도 보기 힘든 나쁜 선거”라며 “그나마 나온 후보 공약도 차별성이 없는 인기 영합 위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수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진보 후보도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을 이야기하는 가식을 버리고 이념과 정책에서 고유의 색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메니페스토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후보들의 차별성 없는 선심성 공약 공세를 ‘뻥 공약’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솔직해야지, 무조건 선심성 공약 내놓고 나중에 고치는 것은 말 그대로 ‘뻥 공약’”이라는 것이다.

여기 가서는 저 소리, 저기 가서는 딴소리 일쑤인 지방 개발 공약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강 후보는 “대선 공약과 시장 선거 공약은 달라야 한다”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시시콜콜 약속을 남발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라면, 큰 틀에서 경제, 정치, 사회가 나갈 방향을 정해주고, 세부적인 것은 그 틀에서 시장, 군수들과 논의해 지켜가는 정치 선진화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구체적 약속이 빠진, 큰 그림만 있는 공약은 자칫 허무하고, 후보 간 차이점을 더 감추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1834년 민주주의의 본산인 영국에서 탄생해, 1997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메니페스토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데 노력해왔던 그가 그리는 ‘한국식 메니페스토 정치’에 대해 물어봤다. 강 후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침없는 답변을 이어갔다.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뱃사공’이 어떨까요”라고 운을 뗀 강 후보는 “바다에 파도는 항상 있지만, 배는 항상 그때그때 좌우로 힘을 실어가며 균형을 잡아갑니다. 정치도 그래야죠.”

그래서 강 후보는 ‘초당적’이란 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보수라 해도 초당적 발상이 필요하고, 진보라 해도 역시 초당적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국민들 앞에 해달라”는 게 선거 평가자에서 보다 못해 당사자로 뛰어든 강 후보의 당부다. 사탕발림 공약이 아닌 정치적 노선에 대해 선택받고, 집행은 여야, 이념을 떠나 초당적으로 해달라는 의미다.

그가 한 주에 한 개씩 내놓고 있는 공약은 그래서 여느 기성 정치인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어디 어디에 뭘 만들겠다’, ‘무슨 공항을 유치하겠다’, ‘뭐뭐를 반값으로 해주겠다’ 같은 말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지방유세도, 쓸때 없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까 두려워, 소규모 정책 콘서트로 대신하고 있다. 대신 “교육과 고용의 틀을 어떻게 바꾸겠다, 중소기업 육성에 예산을 집중 배정하겠다,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논의체를 만들겠다” 같은 다소 막연한 느낌의 것들이 대부분인 것도 이런 소신 때문이다. 그는 이런 초당적 정치, 한국식 메니페스토가 정당 정치를 오히려 강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후보는 “지금까지 우리는 ‘정당=패거리’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이제는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색을 보여주고 선택을 받는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운동이 좀 더 쉬운 정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을 고집한 것도 역으로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해달라는 호소라는 것이다.

최근 끝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에게 또 다른 힘이 되고 있다. “정책 중심의 스피치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며 “쇼가 아닌 정책과 철학이 담긴 선거운동과 TV토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선거 직후 버락 오바마 당선자가 롬니에게 전화를 걸어 ‘초당적 협조’를 부탁하고, 롬니는 연설로 ‘초당적 협력’으로 화답하는 모습 또한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강 후보는 “우리 헌법에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초당적으로 직무에 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한국식 메니페스토 ‘뱃사공 정치’를 우리 정치에 뿌리내리기 위해 다시 코트와 목도리를 고쳐 맨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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